세상에 중독은 많고 완전한 치유는 멀다.
<오징어게임 1>의 주인공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성기훈이라는 캐릭터를 대부분 아실 거라고 본다. 그는 돈이 생기면 곧장 경마장으로 달려가는 심각한 도박중독자다. 딸의 생일날, 그는 연로하신 어머님의 비상금을 털어 경마장으로 간다. 딸의 생일 날짜와 같은 번호의 말에 배팅을 해서 456만 원을 딴 그는, 창구직원에게 만원을 개평조로 건넨 후 자신을 찾는 사채업자를 피해 달아나다가 지갑을 소매치기당하고 만다. 결국 돈을 갚지 못해 사채업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신체포기각서를 쓴 그는, 마감하는 창구에 다시 찾아가 아까 준 만원을 돌려달라고 한다. 벨도 없이. 도박중독으로 이혼한 그는 하나뿐인 딸의 생일선물을 얻기 위해 인형 뽑기를 한다. 만원으로 웬만한 선물을 살 수 있음에도 뽑기라는 도박에 운명을 맡겨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도박중독자들이 판돈이 없어 도박을 할 수 없을 때 아쉬운 대로 인형 뽑기라도 한다고 한다. 성기훈에게 있어 딸의 생일선물은 도박을 하기 위해 포장된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그는 계속해서 뭔가를 걸고 결과를 쪼는 짜릿함을 맛보고 싶은 도박에 중독된 인간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오징어게임 1>은 도박중독자들의 특성을 잘 집약해 놓은 좋은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도박의 비참한 결말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첫 빚 오픈 전, 우리 집에는 인형이 쌓이기 시작했다. 자정을 넘기며 귀가하던 그의 손에는 어느 날부터인가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쥐어져 있었는데 출처를 묻는 내게 집 근처 뽑기 방에서 뽑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사람이 귀여운 취미를 가졌네?’라고만 생각했지, 못다 한 도박의 아쉬움을 그렇게 달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단 인형 뽑기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하루의 시작은 늘 쓰디쓴 커피와 담배가 함께 했다. 물론 커피와 담배야 할 수 있지만, 그 빈도가 점점 더 잦아졌고 농도 또한 세졌다. 술에 취해 귀가하는 날도 잦아졌으며 마시는 양도 점점 더 늘어났다. 그는 전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런 변화들이 사업 스트레스로 인한 것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중독에 따른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중독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는 마치 중독의 연결고리 같다. 술을 마시면 담배가, 연속해 유흥이나 도박이 생각난다. 도박을 할 때는 담배를 계속 피우고, 도박에서 이기면 이긴 대로 유흥의 술을, 패하면 패한 김에 위로의 술을 찾게 된다. 도박으로 돈을 다 잃으면 집에 가는 길에 인형 뽑기 방에라도 들러 도박욕구를 해소한다. 그 돈으로 가족을 위한 떡볶이와 순대를 사갈 수도 있지만, 욕구해소를 선택한다. 도박에 대한 충동적 욕구와 해소, 그게 그들에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형 뽑기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에 중독적으로 집착하는 행위가 도박 중독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도박중독은 다른 중독들에 비해 훨씬 파장이 크다. 알코올중독자가 하루 소주 백만 원 치를 마실 수 없고, 마약중독자가 하루 천만 원 치의 약을 할 수는 없다. 그런 큰 배팅을 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도박은 다르다. 한판에 백만 원, 천만 원, 일억, 심지어 집 한 채 그 이상도 걸 수 있다. 상대는 어떤 배팅이든 기꺼이 다 받아준다. 그러니 하루가 아니라 단 한판으로도 재기불능 수준의 대미지를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도박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쌓아놓은 것들을 한순간에 다 잃을 수 있으므로, 다른 중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피해를 본인과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여러 중독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중독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발을 들이기는 쉬우나 빠져나오기는 너무나 어려운 중독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