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의 서막.
갑자기 남편이 울었다. 출근하려고 현관 앞에 선채로 아이처럼 꺽꺽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초여름이 시작되려던 6월의 어느 맑은 날이었다. 전날 저녁, 큰맘 먹고 산 전복을 넣고 팔팔 끓여낸 삼계탕을 사이좋게 나눠먹은 터라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던 사람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두려웠지만 최대한 덤덤한 척 놀란 기색을 숨기고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일단, 집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그 자리에 선 채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그가 말했다. 오늘 이 문을 나가면 안 들어오려고 했다고.
!!!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집에 안 들어오려고 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일단 그를 집 안으로 안전하게(?) 들여놓은 후 엉엉 울도록 시간을 주었다. 지난 5년간 그는 개인사업을 했는데 아마도 그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추측됐다.
겨우 진정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내가 추측한 대로 사업실패가 맞았는데, 내 예상 밖이었던 부분은 '거액의 빚'이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출을 받는다는 상의나 언질은 없었다. 사업 초기에는 3명의 투자자가 있었는데 그들과 헤어진 이후에도 특별히 자금압박이 있다던지 하는 말은 없었다. 혼자가 된 그에게 내가 회계를 배워 일을 돕겠다 말했지만, 그는 늘 거절했다. 그는 사업에서 나를 철저히 배제시켰었고, 나는 서운했지만 그의 의견을 존중해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티도 내지 않다가 갑작스레 이러다니, 그간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감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내가 몰랐던 빚에 대한 화나 추궁은 생각지도 못했고, 당장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본능만이 들었다. 그래서 내 감정을 한 올 만큼도 헤아리지 못한 채, 그가 만든 수렁 속으로 함께 뛰어들어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사실 그가 사업을 했던 지난 5년간 우리의 관계는 평탄치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위축된 나는 나를 위해 뭔가를 해보지도 못한 채 어색한 집 안을 바꿔보려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렇게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로 나는 꽤 오랜 기간 속앓이를 해왔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야 겨우 나를 찾아 스스로 일어서려던 차였다. 그 시점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폭탄을 그가 터트릴 줄은 정말 예상조차 못했다. 어딘가 변해가는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밖에 나가 돈을 벌기 위해 준비하던 차에, 그에게서 정신적 육체적 독립을 하려던 차에, 나는 또다시 덫에 빠져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전날까지도 아무 문제 없이 행동하던 남편의 연극은 씁쓸히 막을 내렸다. 비록 그것이 고작 1막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는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