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반려견 두 마리.
그는 친구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지방의 한 회사로 내려가게 되었다. 개인회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했고 평소 성실했던 그의 사업실패 소식을 알게 된 친구들은 앞 다투어 우리를 도와줬다. 그중 한 친구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연구원으로 그를 일하게 해 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이주를 고민하는 그에게 나는 괜찮으니 무조건 내려가라고 했다. 그곳엔 마침 그의 본가가 있으니 거기에서 출퇴근을 하면 될 터였다. 일단 크게 한숨 돌렸다.
그동안 나는 방송국 공모전에 출품할 드라마 대본을 쓸 계획을 세웠다. 이미 기획한 것들이 있어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 물론 제일 좋겠지만 일단 나도 집중할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써 놓은 대본으로 보조작가라도 지원할 수 있으니 일단 잠시 떨어져 있는 게 맞겠다 했다. 그가 없는 7개월 동안 먹고 자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드라마를 기획하고 취재를 해서 대본을 썼다. 더 이상 팔을 쓸 수 없을 때까지,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그냥 닥치는 대로 썼다. 그해에 쓴 대본(졸작이지만)이 70분 단막극 분량(35p)으로 24편에 달했다. 공모전이란 공모전에는 모두 도전했지만(단막극, 2부작, 4부작, 미니 할 것 없이), 반가운 소식은 없었다. 실력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견뎠다. 사실 개인회생 인가가 나면 서울 집을 정리하고 그 지역으로 내려가게 될 줄 알았기에 서울에 있을 때 나름 전력을 다해보고 싶었다. 행여 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서울의 한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우리는 다시 서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개인회생 기간 3년. 3년만 고생하면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아직 젊다. 그렇게 나를 달랬다. 물론 그의 부탁에 의해 내 앞으로 진 적지 않은 빚 또한 있고, 20대부터 차곡차곡 모아 온 나의 전 재산은 그의 명의 전세금으로 몽땅 들어갔으며, 그 돈마저 송사에 휘말려 모두 잃어 수중에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
그간 생활비는 최소한으로 받아왔고, 사치와 낭비는 딴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때문에 그런 큰 빚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건 아니었고, 우리가 소박하게 살 정도의 규모로만 가늘고 길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도 곧 일을 시작할 거니, 그래 부족한 부분은 내가 벌면 되지 생각해 왔다.
그러나 순간순간 올라오는 속았다는 기분, 나 모르게 거액의 대출을 받아왔다는 배신감은 단전 어딘가에 남아있다가 불쑥불쑥 튀어올라 나를 괴롭히며 갉아먹고는 했다. 죽겠다고 했던 사람에게 내 입장을 들어 따질 수도 없었기에 그 감정들을 속으로 삭여가며 나는 점점 곪아갔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언젠가 다 지나가리라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