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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와치 Oct 12. 2024

나 홀로 서울에.

feat. 반려견 두 마리.

그는 친구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지방의 한 회사로 내려가게 되었다. 개인회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했고 평소 성실했던 그의 사업실패 소식을 알게 된 친구들은 앞 다투어 우리를 도와줬다. 그중 한 친구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연구원으로 그를 일하게 해 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이주를 고민하는 그에게 나는 괜찮으니 무조건 내려가라고 했다. 그곳엔 마침 그의 본가가 있으니 거기에서 출퇴근을 하면 될 터였다. 일단 크게 한숨 돌렸다.


그동안 나는 방송국 공모전에 출품할 드라마 대본을  계획을 세웠다. 이미 기획한 것들이 있어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 물론 제일 좋겠지만 일단 나도 집중할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놓은 대본으로 보조작가라도 지원할  있으니 일단 잠시 떨어져 있는  맞겠다 했다. 그가 없는 7개월 동안 먹고 자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드라마를 기획하고 취재를 해서 대본을 썼다.  이상 팔을   없을 때까지,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그냥 닥치는 대로 썼다. 그해에  대본(졸작이지만) 70 단막극 분량(35p)으로 24편에 달했다. 공모전이란 공모전에는 모두 도전했지만(단막극, 2부작, 4부작, 미니   없이), 반가운 소식은 없었다. 실력까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어쨌든 덕분에 견뎠다. 사실 개인회생 인가가 나면 서울 집을 정리하고  지역으로 내려가게   알았기에 서울에 있을  나름 전력을 다해보고 싶었다. 행여 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얼마  그는 서울의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우리는 다시 서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개인회생 기간 3년. 3년만 고생하면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아직 젊다. 그렇게 나를 달랬다. 물론 그의 부탁에 의해 내 앞으로 진 적지 않은 빚 또한 있고, 20대부터 차곡차곡 모아 온 나의 전 재산은 그의 명의 전세금으로 몽땅 들어갔으며, 그 돈마저 송사에 휘말려 모두 잃어 수중에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


그간 생활비는 최소한으로 받아왔고, 사치와 낭비는 딴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때문에 그런 큰 빚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건 아니었고, 우리가 소박하게 살 정도의 규모로만 가늘고 길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도 곧 일을 시작할 거니, 그래 부족한 부분은 내가 벌면 되지 생각해 왔다.


그러나 순간순간 올라오는 속았다는 기분, 나 모르게 거액의 대출을 받아왔다는 배신감은 단전 어딘가에 남아있다가 불쑥불쑥 튀어올라 나를 괴롭히며 갉아먹고는 했다. 죽겠다고 했던 사람에게 내 입장을 들어 따질 수도 없었기에 그 감정들을 속으로 삭여가며 나는 점점 곪아갔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언젠가 다 지나가리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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