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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와치 Oct 19. 2024

그의 개인회생이 폐지되었다.

나와는 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그간 모아 둔 천만 원으로 남은 몇 달간의 변제금을 일시상환 해주려 하고 있었다. 한 달이라도 빨리 그의 신용을 회복시켜주고 싶어서. 그렇게라도 다시 자존감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총 3년의 개인회생 기간 동안 절반가량을 내가 그의 월급을 관리하며 납입했고, 이후의 변제금은 그가 직접 회생계좌로 넣기로 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스스로의 신용을 망칠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개인회생의 당사자는 그 자신이기에 한 치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믿었다. 계속 내가 납입했다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결과가 달라졌을까. 어쩌다가 그에게 그 권한을 내어주게 되었던 거지? 내가 왜 그랬을까.


 기억이 흐려 카톡에 남겨진 그의 핑계를 다시 찾아보았다. 남은 기간은 본인이 직접 회생계좌로 회생비를 납입해야 되니 앞으로는 월급에서 회생비를 제하고 준다고 그가 먼저 말했다. 나는 중간중간  넣고 있느냐고 확인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후부터 그의 늦은 귀가가 다시 시작되었던  같다. 마침 코로나로 5 이상 집합금지가 해제되던 즈음과 맞물리는 시기였다.  거래처,  회식, 야근 등의 일과 관련된 핑계를 댔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믿어줬다. 사업에 실패하고도 마음을  추스르며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이  다행스러웠고  고마웠기 때문에 늦은 귀가나  음주,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관대하게 대하려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납입을 6개월 앞둔 어느 봄날. 동네의 제법  공원에서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풀이 죽은 그에게 나는 이제  회생이 끝나니 앞으로    거다,  시간들을  버텨온 나를, 우리를 칭찬하고 싶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런데 암만보아도 그의 얼굴은  회생을 끝내는 사람의 홀가분한 그것이 아니었다. 사업실패라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구나, 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날 맥주  캔을 마시며 집에서 대화를 하는데 그가 걷잡을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모든  포기하려 했다고, 그러고 싶었다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회생비… 내고 있지?”

“……”

“설마… 회생비 안 내고 있었어?”


그가 서럽게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그 말, 그때 나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사업실패를 고백했던 그날처럼 내 감정을 표현하거나 화를 낼 수 없었다. 또다시 그를 위로하고 달래며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를, 나 스스로를 위안했을 뿐.


그때까지도 나는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했었나 생각하며, 마음을 잡지 못하는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대로 좌절할 수는 없었기에 다시 개인회생을 신청하자고 그를 설득했다. 그렇게 다시 변호사 수임료와 여러 비용들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간 모았던 천만 원은 회생을 완료해보지도 못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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