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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와치 Oct 26. 2024

이혼 28일 후 알게 되었다. 그가 도박중독이라는 것을

feat. 분노 바이러스, 좀비 아포칼립스, 결혼 스릴러.

이혼 후 그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지 28일이 되던 날. 급작스런 병으로 두 번째 반려견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준 후라 멍하니 누워 있다가 문득 로드뷰를 켰다. 본가로 오기 전에 강아지와 산책 다니던 길을 따라가 보려고, 너무 그립고 소중한 시간들을 다시 복기하고 싶은 마음에. 근 십여 년 만에 처음 혼자가 된 덕이었을까, 이제 뒤치다꺼리를 할 존재가 없어졌다는 웃픈 여유 때문이었을까. 불현듯 그의 동선들을 거리뷰로 훑기 시작했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곳곳의 도박 관련 시설(?)들이었다. 평소엔 전혀 인지를 못했는데, 멀리 떠나온 지금은 눈에 확 들어왔다. 인생이란 이토록 아이러니다.


그간 나는 몇 번이나 도박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했었다. 도박을 의심했다기보다는 사업의 규모에 비해 큰 빚이 설명되지 않아서였다. 사업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여자든 도박이든 사기든 있어야 사건의 퍼즐이 맞을 것 같아서. 평소 도박에 대해 좀 알았다면 제대로 의심이라도 해봤을 텐데, 아예 무지했기 때문에 눈치조차 못 챘었다. 또한 평소 힘들어 휘청대는 사람을 앉혀 놓고 취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는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 봐 빚의 사용처에 대해 제대로 캐물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바로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1336번)이라는 전문기관을 통해 그간의 일들을 상담한 결과, 그는 도박중독이 맞는 것 같았다. 가족이 이렇게 장기간 속는 경우 또한 다반사라고 하셨다. 도박중독자의 가장 큰 특성이 거짓말이기에. 내 촉과 정황, 상담사의 의견이 모두 일치한다. 나에게 끝까지 숨겼으나 그는 도박을 한 것 같다. 반려견을 보낸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더 새롭고 강한 것이 내게 던져졌다.


이러면 이야기가 완전 달라지는데나는 정말 당한  되는 건데그래도 믿었고 믿으려 노력했는데사업 빚이 아니라 도박 빚이었다면, 암만 이혼은 했기로서니 그와 나의 관계는 달라진다. 그건 그렇고 대체 그간 나는 얼마나 촘촘히 속은 것인가. 합당한 문제에 대한 의를 제기할  없는 .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말고도 극단의 동점심을 유발하며 상대를 가스라이팅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편이 여자로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내가 그랬으니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가 진정으로 나를 존중했다면 문제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도박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만 나에게 던져주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털어놓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나에게 빚을 지우고 내 카드를 쓰고 한 집에 살고 함께 밥을 먹었으면서,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일반적인 심리론 이해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게 결과가 아닌 원인을 말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 아니었겠나.


살면서 화투 한 번 제대로 쳐 본 적이 없던 나인데, 딱밤 말고는 딱히 걸어본 내기도 없던 내게, 팔자에도 없던 도박으로의 세계가 ‘웰컴!’하며 두 팔을 활짝 펼쳐버렸다. 그리하여 이혼 28일 후 나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처럼 도박중독에 대해 닥치는 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언젠가는 이 고비를 뛰어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나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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