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축하받는 이혼이라니.
아흔을 바라보는 외할머니가 엄마와 통화 도중 내가 본가에 내려왔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말씀하셨다.
“아이고, 잘했다, 잘했어! 어쩌려고 그래, 그동안 그 마음고생을 하면서 서울에서… 잘 내려왔다, 잘 왔어! 이제부터 거기 휘둘리지 말고 재미있게 잘 살면 된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가고. 이 좋은 세상에 왜 그렇게 살아, 살긴.”
세상 안심하신 밝은 목소리로 집안 제일 어른의 축하(?) 전화를 받으니 마음의 묵은 때가 쑥 내려가는 듯했다. 모진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에게도 내가 고생한 거 맞는구나, 나 정말 잘 한 거구나, 하는 안도감. 할머니는 엄마 편에 장성하다 못해 꺾인 손녀의 용돈까지 보내주시며 그렇게 나를 격려해 주셨다. 결혼 후 십여 년 만에 새삼, 내게도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그간 홀로 싸워왔으니까…
며칠 후, 은퇴해 계신 친가의 삼촌도 엄마를 통해 내 소식을 접하셨다. 그리곤 모르는 척 내게 전화하셨는데, 내가 상처받을까 봐 에둘러 말씀하시는 흐름을 깨고 “삼촌 다 알고 있잖아요. 엄마가 다 말했다던데.”하니까 멋쩍게 껄껄 웃으셨다. 그리곤 아주 잘했다, 하시더니 잠시 후 계좌로 큰돈을 보내주셨다. 집에 있으면 가라앉으니 나가서 맛있는 것 사 먹고 돌아다니라고. 생각지도 못한 용돈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지금까지 고이 통장에 넣어두고 있다. 그 돈 난리를 겪은 덕에 아직은 돈을 쓰는 게 영 쉽지 않고, 돈이라 하면 일단 겁부터 나는 상황이라 내심 소비보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흔이 다 되신 외삼촌께서는 작년, 친정에 다녀가는 엄마를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시며 넌지시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를 계속 거기 둬도 되겠느냐고,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건데, 그 큰 책임을 내가 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이 아니니, 엄마가 나를 잘 설득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엄마는 내가 이혼을 결정하고 나서야 이 이야기를 전해 주시며 나의 결정에 지지를 보태주셨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구나, 하며 조금이나마 힘을 낼 수 있었다. 이토록 깨어있는 경상도 어른들이라니, 내심 감사하다. 내 사연을 아는 친구들의 의견도 비슷했지만, 특히 보수적인 어른들의 격려인지라 더욱 그랬다.
사실 끝까지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그의 개인회생이 폐지되고 재 신청 후 인가를 기다리면서도 이혼은 내 선택 범주에 넣지 않았다. 다만, 다시는 금전적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 달라, 한 번만 더 같은 일이 생기면 더는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진지하게 말했었다. 그러던 작년 12월의 어느 날, 전날 반려견에게 응급상황이 와 병원에 입원시켜 두고 잠시 집에 있던 중 엄마의 전화가 왔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맥이 풀려 강아지의 상태를 말하는데, 더 맥 풀린 목소리의 엄마가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네가 다 알고 있는 게 맞냐…”
10년을 키운 강아지가 오늘내일하는데, 지금 이거보다 더 중한 일이 있나? 문득 두려움이 몰려왔다. 학습된 공포라고 할까, 또 무슨 일일까 다리에 힘이 먼저 풀리는 신체 반응. 미친 듯 뛰는 심장은 기본옵션.
결론적으로 그는 그날 아침 내 남동생에게 문자로 연락해 1억이 넘는 돈을 대출받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당장 쫓기는 사람처럼, 당장 얼마 얼마, 합이 일억이 좀 넘는다, 누나는 모르니 몰래 대출을 좀 해달라. 동생이 거절하기 힘들도록 ‘누나, 누나’를 넣어가며 대출을 재촉하는 급박한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내 동생에게 나를 인질로 삼아 협박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돈을 안 해주면 매형에게 큰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함… 동생은 중요한 외근 중 고속도로에서 이 문자를 받았고 곧장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엄마는 차마 내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여동생의 채근으로 내게 모든 사실을 전한 것이었다. 엄마는 내 결혼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고, 여동생은 이건 언니가 알아야 할 일이다 주장했다고. 물론 나도 여동생의 생각과 같다.
어쨌거나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새로운 빚을 나는 알게 되었고, 손발이 떨리며 두려워졌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일억이라는 큰 빚의 출처도 모르겠고, 이건 뭔가 내가 인내하고 커버할 수 있는 급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귀가하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도어록을 누르고 들어왔다. 화요일, 평일이었고, 나는 경찰에 내 생애 첫 실종신고를 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그날 밤,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까맣고 두려웠던 밤에.
이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관계가 닫힌 결말은 아니라 믿었다. 서로의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재회할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혼 후 그간 그의 돈문제가 사업실패로 인해 불어난 빚이 아닌, 도박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희망을 접었다. 그간의 거짓말들에 대한 배신감은 촉매가 되어 나의 마음을 정리해주고 있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물리적 거리 두기에 성공했다. 정서적 거리 두기라는 더 커다란 숙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는 모든 문제가 선명해졌으므로 시간이 걸릴 뿐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또한 아무리 가까운 이들이 나의 이혼을 지지해 줬다고 한들, 이혼 후에 오는 갖가지 감정들과 모진 비바람은 혼자 오롯이 감당해 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생각보다 마음이 쉽지 않다가, 또 어느 날은 괜찮기도 하다. 사계절 날씨 같이 변화무쌍한 마음이다. 좀처럼 나도 나를 알 수 없고 컨트롤도 쉽지 않은 나날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굳게 믿으며 마음이 혼란할 땐 언제나 그랬듯이 노트북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