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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n 29. 2023

맛있는 행복


유난히 새파란 하늘이다. 넓디넓은 하늘에 조각구름이라도 하나 떠 있을 법하건만 아무것도 없으니 현실감이 없다. 뉴스에서는 비가 온다고 했었다. 비 오는 날이 좋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산이라는 세상 속에 자기를 가두는 날이니까. 앞을 보는 데에 바빠 양 옆과 뒤를 보는 것을 소홀히 하니까. 물론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귀 속을 한가득 울려대니 바깥의 소리에 둔감해진다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온 세상이 색색의 향으로 가득 차는 건 또 어떻고.


하지만 그렇다. 비 오는 날에 즐거운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옷이 젖고 짐이 늘어나는 날이라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 좋다. 그런 나는 어떠냐 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의 행복을 먹고 행복하다. 이렇게 맑은 날은 나의 행복을 채워줄 사람들이 도처에 널린다. 결론은 뭐. 맑은 날도 좋다고.


햇빛이 강렬해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다. 사방에서 풍기는 향이 모두 뜨거운 햇빛을 닮았다. 코가 찌릿찌릿하다. 찌푸린 눈 너머로 하얀 원피스가 아른거린다.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들리는 것 같은데.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 맘에 쏙 드는 걸.


"저기. 좋은 일 있나 봐요? 나도 같이 좋읍시.."






희연은 오늘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다. 드디어 5년을 사귄 남자친구 정우가 프러포즈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프러포즈할 것 같다'라고 결론 내린 것은 희연이 잡은 몇 가지 증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웬일로 드레스 코드까지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여태껏 사귀면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까지는 가 봤지만 차려입고까지 가야 하는 곳은 가본 적이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벤트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놀다 보면 늘 먹는 건 거기서 거기로 패스트푸드나 단골식당을 자주 간다. 편하니까.


둘째. 이게 정말 결정적인 이유다. 희연의 친구가 유명한 보석가게에서 정우가 점원과 함께 열심히 반지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상의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반지라면 커플반지도 하나 안 한 우리인데. 대체 뭘 산단 말인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아닐까?


셋째. 정우에게 생일 이벤트를 했던 곳에서 이번엔 정우가 뭔가를 의뢰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것은 반지 이야기를 듣고 희연이 이벤트 회사에 전화해서 끈질기게 물어봐 얻어낸 소득이다.


약속날 희연은 눈꽃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발걸음도 가볍게 나풀나풀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하늘은 비가 온다더니 쨍하게 맑았다. 새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꼭 정우와 희연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희연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내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미소와 함께 그녀를 흘끗거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새파란 나무들이 하늘 높이 뻗어 있는 공원을 지날 때였다.


'윙~ 윙~'


귓가로 뭔가가 날아들었다.


"뭐야!"


희연은 망설임 없이 여기다 싶은 곳으로 두 손을 뻗어 큰 소리를 내며 탁! 손을 마주쳤다. 들여다본 손바닥에는 새카만 모기 한 마리가 납작하게 눌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들러붙어 있었다.


"아. 지금 프러포즈받으러 가는데 재수 없게"


사방을 둘러보는 희연의 눈에 마실 수 있게 설치해 놓은 수도가 보였다. 보자마자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깨끗이 씻고 가야지."


더운 여름이었다. 전날까지 비가 왔던 탓에 공원에는 물 웅덩이가 곳곳에 있었다. 사방에서 모기들이 윙윙거렸다. 행복을 찾는 모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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