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아직 하늘에 떠 있을 때 집에 왔건만, 넘치는 흥분은 정리하는데 다 쓰고 아이들을 재우며 자버렸다. 그래서 하루가 늦었지만 여행의 마지막 기록을 해본다.
마지막까지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내 욕심이 과했는지 태풍이 두 개나 생기면서 여행의 둘째 날 밤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전날 새벽처럼 구름사이로 아주 조금이라도 틈이 벌어져서 별들이 보이기를 바랐는데, 어림없다는 듯이 지붕이 부서질 것처럼 빗방울이 떨어졌다. 새벽에 몇 번을 내다보았는지 모른다. 나의 일말의 희망은 모조리 비에 쓸려 내려가버렸지만.
다행인 건 해가 뜨고 비가 거의 멈췄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는 교통편은 올 때 와 다르게 섬을 오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던지라 비가 오면 정말 큰일이었다. 아침부터 온 섬을 울리는 방송에서는 배의 결항을 알려댔다.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해 본 공항에서, 뜰 가능성이 큰 조금 빠른 비행 편으로 예약을 바꿔줬을 때는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도 부르기 힘들고, 버스는 하루에 4번만 다니며, 차를 빌려봤자 공항 근처에 반납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걷기였다. 택시라도 부를까 싶어 관광협회에 가서 물어본 결과 걷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희망적 이게도 구글맵에 표시된 길은 다 걸을 수 있다는 확답도 얻었다.
"걸어가자."
이 한마디에 무거운 집을 각자 한 짐씩 매고서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섬 곳곳을 돌아다니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가는 길에 아주 조금 해소될 거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우리는 눈앞에 두고 한 번도 가지 않은 해변을 걷고, 모래사장과 똑같은 색을 하고 있는 게와 만났다. 예쁜 조개와 돌을 줍는다며 눈을 부릅뜨고 모래 위를 살피기도 했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공항으로 가는 길이라 경사가 급한 곳을 걸으면서, 전날 올랐던 험한 산에서의 5시간에 걸친 등산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커다란 집을 등에 매고 있는 달팽이들과 벌레들을 보고 흥분하며 소리 지르기도 했다. 표지판을 잘못 보고 틀린 길을 한참 걷다가 되돌아나가면서 끝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에서 뜨는 비행기는 고작 정원이 19명 밖에 되지 않았다.
탑승(?) 40분 전까지 비행가능한 상태인지 날씨를 살펴본 끝에 우리는 무사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양 창가로 일인 좌석이 늘어져 있고, 꼬리 쪽에 2석, 3석이 있는 구성의 작디작은 비행기였다. 하긴. 우리 집 위를 지나다니는 걸 자주 보는데, 난 그때 2인용 비행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벨트를 매고. 양 날개 쪽에 달린 프로펠러를 한참 돌린 후에 드디어 출발.
온몸을 후들기는 듯한 엔진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달려 나갔다.
아. 바람 때문일까. 좌우로 흔들리며 달리는데 눈이 다 휙휙 도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날아오를 때의 흔들림이란. 그대로 비행기가 뒤집어질 것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비행기를 타고 나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자에 앉아 떠 있는 기분이라 선회할 때 밑에 보이는 섬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기도 했다. 위아래, 양옆으로 흔들리는 통에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양 옆에 둥이들을 앉힌 채라 말은 못 하고 '우와', '저것 좀 봐.'를 반복했던 것은 사실 무서움을 떨치기 위한 것이었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창문에 들러붙은 듯 몸을 들이밀고 내다보고 또 보고,
흥분이 들끓다 못해 넘쳐흘러 내내 손가락질과 함께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해댔다. (엔진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바로 앞에서 뭐라고 하는데 하나도 안 들리더라.)
착륙할 때의 충격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바퀴로 비행기의 무게를 지탱하는 놀라움이라니.
이 넘치는 흥분 덕분에 우리는 공항에서 집에 가기 위한 전철역까지의 30분이 넘는 걷기도 거뜬히 해냈다. 늦은 점심도, 저녁준비를 위한 쇼핑도,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버스까지 타는 번거로움도 다 견뎌냈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어."
모두가 뿌듯해하며 말을 주고받는데 이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신나는 웃음 끝에서 우리는 씨익 웃으며 다음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다음엔 또 어디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