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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루스 Feb 26. 2021

지나온 두 달간 난 무엇이 변했을까?

소회

 자극적인 음식만을 먹었던 난, 이젠 담백한 음식만을 찾는다. 항상 밥을 먹은 뒤 마셨던 카페인과 탄산 대신 보리차를 즐길 수 있고, 원래 마시지 못했던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어둠보다는 빛이 익숙해져 잠드는 시간이 언제건, 일찍 일어나 햇빛이 피부에 닿음을 느낀다. 귀를 울리는 베이스와 강렬한 드럼 뿐이었던 내가 저급한 낭만 같았던 사랑노래들의 음표가 플레이리스트를 채웠고, 고상하게만 느껴졌던 피아노와 첼로의 음색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항상 끝을 채웠던 볼륨 칸이 이젠, 흰색보단 검은색이 더 많아졌다. 오가는 대화의 즐거움만큼 잠시 간 침묵의 어색함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깜빡이는 신호등 앞에 뛰기보단 정지와 정지 속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조용히 흘러나오는 노래에 여유를 느낀다. 무의미했던 걸음 같았던 내 산책은, 이젠 그 무의미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돌고 돌아 27살이 되었다. 초침이 오른쪽으로 돌수록 내 나이에 젊음보단 다른 형용사가 붙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진다는 식상한 어구가 이젠 내겐 감사할 따름이다.


 건조했던 내 표정들 속 감정의 혼란스러움 들은 점차 느리고 여유로운 단어들로 바뀌어 간다. 사실 변화하지 않아서, 새로운 내 모습이 아니라서 좋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뻔한 자기 계발서의 구절과 같은 말을 더 이상 비웃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고, 날 싫어하는 사람들의 미움에 무덤덤해진다. 내 눈 앞의 누군가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아픔 혹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입을 통해, 언어를 통해 나에게 건네지 않아도, 그의 눈과 우리 둘 사이 공기의 온도가   날 감동시키고 알 수 있게 해 줬다. 얼마 전부터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이전엔 책들의 페이지가 혹은 그 수많은 양의 지식들이 날 강박처럼 조여왔지만,  이젠 아름다운 단어를 고르고 찾기 위해 애썼던 작가의 노력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연히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 속에서 감동을 느끼듯이 한 페이지만 읽어도 마음이 따뜻했다. 얼어만 있던 내 마음이 이번 겨울엔 녹아, 흘러 흘러 지나왔던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날 감추기 위했던 비유들이 이젠 날 더 정확히 표현해주기 위해 쓰인다.  나에게 솔직해졌다. 항상 나의 추함과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 뒤에 숨었던 내가. 감정들에게 진실한 것이 예술이라면, 그동안 너무나 멀게 혹은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내가 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오랜 시간 놓았던 펜을 다시 든다. 어릴 적, 아버지는 집에 가득했던 책들을 뽑아 항상 읽고 계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특유한 사회성과 쾌활함으로 일평생 누군가와 싸워보신 적이 없으셨다. 내가 만일 두 분께 받은 능력이라 함은, 그 두 가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기장에 썼을만한 이런 글을 누군가는 읽을 수 있게 보이는 것도 그간의 변화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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