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의 성장일기 Aug 20. 2024

도수가 안 맞는 안경을 끼고 다니게 해서 너무 미안해

내가 휴가를 내지 않았다면 너는 계속 안 맞는 안경을 끼고 다녔었겠지 

목요일 광복절이 있는 주, 월화수 3일 있는 휴가를 다 쓰고 남은 금요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연차휴가는 남은 게 없었지만, '생리휴가'라든지 '자녀 돌봄 휴가'라든지를 사용할 수 있어서 그냥 푹 쉬고 싶어서 금요일에 '자녀 돌봄 휴가'를 냈다 (눈치가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냥 썼다). 이 휴가의 경우, 아이의 병원진단서를 나중에 내야 했기에 이 기회에 아이를 데리고 안과라든지 치과라든지 돌아보기로 했다. 


고학년 첫째 아이와 간 곳은 안과였다. 아이는 근시가 진행 중이기도 했고, 최근에 근시 진행 때문에 새로 처방전을 받아서 맞춘 안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등이 궁금해서였다 (유전적으로 눈이 나쁘기 때문에 가족들이 안과를 자주 가기도 한다).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선생님이 물으셨다. 


'아직 안경을 안 바꾸었지요?'

'네?? 안경 바꾸었는데요?' 

'도수가 그대로예요. 새로 처방받은 도수와 예전도수가 차이가 많이 나는데, 도수가 그대로입니다' 


너무 황당했다. 아이가 7세부터 다녔던 그 안경점에서, 언제나 독일제를 권하면서 비싸게 결제를 했던 그 안경점에서, 도수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안경을 씌워주었다니. 그리고 아이는 계속 그 안경을 끼고 있었다니. 뒤에 앉으면 잘 안 보인다고 했었을 때 흘려 들었었나, 나는 또 죄책감에 휩싸였다. 


안과에서 나와서 아이의 안경을 맞추었던 안경점에 갔다. 안경점에서는 특수한 렌즈이고, 이 부분에서는 도수가 아니지만, 저 부분에서는 도수가 맞다고 하였다. 내가 아마도 세게 보이지 않아서였는지 (자격지심일 수 있다), 안과에서 다시 재 보라고 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안과로 향했다. 다행인 것은 안과와 안경점, 그리고 우리 집이 모두 청담역 근처에 있어서 다시 들리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힘들지는 않았다 (덥기는 너무 더웠지만, 버스도 타고 지하도로 걸으니 괜찮았다). 안과에서 30분 넘게 기다렸고, 설명을 했다. 안과선생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도수 재는 것을 정말 너무나 간단한 작업이고, 틀릴 수가 없다고. 아마도 그 안경점에서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과거에 처방한 도수 및 현재 안경의 도수 (과거 처방대로 되지 않았다는 증거), 그리고 그동안 안 맞는 안경을 끼고 있었기에 아이의 시력이 변해서 새로 맞추는데 필요한 도수까지 다 쓰인 서류를 내주셨다. 


유전적으로 시력과 눈에 예민한 나는 너무나 속이 상했다. 아이가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끼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시력이 또 조금이지만 안 좋아졌다는 점. 그리고 내가 만약에 휴가를 내지 않았다면 이 사실을 모르고 아이가 계속 안 맞는 안경을 끼고 다녔을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우선 시간이 돼서 학원에 아이를 넣어두고, 예전에 학부모들에게 추천받은 안경점을 검색해서 학원이 끝나는 길에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안경점에 데리고 갔다. 이 새로운 안경점에서도 아이의 안경이 처방전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도매 안경점이기에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단시간에 안경을 맞춰줄 수 있다고 해서, 아이에게 제대로 된 안경을 씌워주고 싶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맞춰달라고 했고, 아이는 새로운 안경을 쓰더니 너무나 잘 보인다고 했다. 기존 안경으로는 멀리 있던 글자들이 잘 안 보였는데, 지금은 잘 보인다는 것이다. 근시가 심해서 도수가 엄청 올라갔는데도 어지러워하지도 않았고 (너무 슬프다), 안경점에 나와서도 한글을 새로 배운 아이처럼 표지판들을 읽어나갔다. 아, 정말 너는 불편했구나. 


나는 또 죄책감에 휩싸인다. 내가 아이를 더 찬찬히 살펴보았다면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눈이 얼마나 중요한데, 한참 크고 있는 나이에 너는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그냥 불편한 대로 살고 있었구나. 정말 내가 그냥 눈치가 보여서 휴가를 안 썼으면 정말 한참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겠지. 그러면 네 눈은 더 안 좋아 있었을까. 오히려 아기 때보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손이 참 많이 간다. 아마 조만간 교정도 해야 할 테고, 아마 성장검사로 받아봐야 하겠지. 그때마다 눈치를 보면서 돌봄 휴가를 써야 할까. 그 휴가도 일 년에 몇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면 연차휴가가 생기는 내년에 데리고 가야 하는 걸까. 나는 오늘도 고민을 한다. 


도수를 잘못 맞추어준 안경점에는 남편이 갔고, 환불해주기로 하였다. 왜 내가 갔을 때와는 반응이 달랐을까.          









 

이전 03화 엄마도 휴식이 필요해, 일본의 클럽메드 토마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