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지금까지 살아온 어떤 중요한 선택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집 안의 고요가 너무 낯설었다.
항상 새벽의 기계 소리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분필 긁는 소리가 나의 ‘일상’이었는데.
이 고요는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나는 조용히 커튼을 걷었다.
햇빛이 부드럽게 들어왔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다.
그동안 나는 이런 아침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따뜻한 차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은 이걸로 시작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따뜻함에 숨이 조금 트였다.
“… 고마워.”
아내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 표정이 내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그동안 얼마나 버텨왔는지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했다.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제야 마음속 깊은 곳이 천천히 풀렸다.
‘나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버텼을까.’
‘왜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자책이 아니라, 문득 떠오르는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새끼줄처럼 이어졌다.
나는 왜 꼭 ‘좋은 사람’이어야 했을까? 왜 누군가의 기대를 지키려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을까?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몸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딸아이가 다가왔다.
“아빠, 오늘 안 가?”
“응. 아빠 오늘 쉬는 날이야.”
“진짜? 아빠가 쉬는 날도 있어?”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딸에게조차 ‘쉬는 아빠’의 모습은 낯선 존재였다.
나는 딸을 안으며 말했다.
“응. 아빠도 쉴 때가 있어야지.”
딸아이는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아빠 얼굴… 오늘은 덜 피곤해 보여.”
그 말이 어떤 치료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다.
해가 질 무렵 발코니에 서서 바람을 맞았다.
바람 냄새가 이렇게 시원했나. 이런 작은 느낌조차 한참 동안 잊고 살았다.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했다.
“멈추는 건… 포기가 아니야.” “쉬는 건… 도망이 아니야.”
정말로 그랬다. 이 하루를 지나며 알게 됐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조금의 조용함, 조금의 숨 고르기, 그리고… 조금의 ‘나’였다.
밤이 되자 기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쌤. 오늘 잘 쉬었어요? 사람은요. 고장 나기 전에 멈추는 게 제일 좋은 법이에요.”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네. 오늘은…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내 안의 혼란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정돈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