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수학을 쉽고, 원론적으로 가르치고 싶어서였다. 그런 방법은 정말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느리지만, 나중에까지 기억나는 방법이다. 쉽고 편한 공식은 점수를 위해선 가장 효율적이지만, 시험보고 나면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이것을 가지고 EBS에서도 실험하여 방영한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방법은 학원측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학원에서 광고는 특목고 몇 명을 보냈네, 인서울 몇 명을 보냈네 이런 광고로 수강생을 모집했다. 그려러면 점수를 높이는 전략을 써야 했기에, 나는 학원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원장은 나를 내치지 않고, 학원에서 가장 점수를 못 내는 하위반을 맡겼다. 정말 학원에 가기만 하라고 하는 부모들의 아이들이었다.
그 학생들을 데리고 한 학기 동안 가르쳤다. 수업시간 이전에 1시간씩 매일 불러 보강을 해줬다. 학원에 전용 교실을 주었기 때문에 이것도 가능했지, 지금은 빈 강의실을 그냥 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내가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말이다. 나는 그런 열정이 있었다. 그 당시 학원 한 반의 인원이 거의 28명에서 30명이었다. 학교는 40명 -50명 대였으니, 일반반의 학급 인원은 학교대비 학원이 훨씬 적은 편에 속했다.
나는 하위권의 아이들을 맡는 대신 10여 명이었다. 그 학생들 중에도 나름 계산을 잘 하는 학생, 수학에 아예 흥미가 없는 학생, 수학을 가르치면 성장할 학생 등 다양한 특성과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 때는 몰랐었다. 학원도, 부모도, 학생도 나의 교수학습에 관한 모든 것을 일임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 저것 교육적 시도뿐 아니라 비교육적 시도도 많이 했었다.
그 결과는, 수학점수의 대폭 향상으로 나타났다. 학원은 나의 성과로 인해 광고를 다시 냈다. 특목대상 아이들은 언제나 잘하는 것이지만, 만년 꼴찌인 학생의 한 학기 동안의 이 같은 성장은 부모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갑자기 학원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송년회 때 금일봉과 1돈 금반지까지 받았다.
원장과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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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이렇게 답했었다.
애들 얘기 들어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너무나 단순한 대답에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했다. 마치 전교1등에게 시험성적의 비결을 물어보니, 교과서만 공부했어요란 답과 같았을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
부모가 믿고 맡겼고,
가르치는 나도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설사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사회적 분위기가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겪은 그 경험으로
가르치는 사람의 주관과 교육경험이
학생과 부모에게 믿음을 갖게 하느냐 아니냐도 중요하고
기관의 장이 어떻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나의 마음을 고이 접는다.
지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지위는 그런 것을 봐 줄만한 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닫는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 담임교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이 조직,
나는 교사가 아니니까, 교사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로써만일에 임해야 한다.
조직도 일개 직원이 한 언행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니, 그저 잘못했다고만 하라고 한다.
그래, 교육에 책임이 있는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뭐라고 그러는지 나도 내가 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