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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25)

감정은 소중한 것.

4-12. 가능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인정하고 표현할 도구를 가져라.


 가능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태도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첫 발자국입니다. 또한 타인도 받아들여지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힘도 생깁니다. 진실된 솔직함은 결과가 어찌하든 충족감을 가져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갈수록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솔직한 표현을 잘해나갈 수 있습니다. 솔직함을 강조하는 것은 솔직해질 때 타인을 통해 나의 감추고 억압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외의 모습이 나를 당황스럽게 할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직면할수록 무겁게 누르고 있는 나의 마음도 만나게 합니다. 자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짐처럼 쌓아둔 감정과 욕망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쉽게 공감하며, 가장 빠르게 치유됩니다. 

  내가 원인 제공자가 되어 타인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보낼 때 상대가 수용하고 사랑해 주기는 어렵습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에너지는 우리 자신에게 몇 배로 무겁게 돌아옵니다. 솔직한 감정을 모두 받아줄 그런 관계는 흔치 않으므로 힘들어도 꾸준히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금 더 사랑의 마음을 키우면서 열어갈 때 가능성도 커집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열린 가슴으로 만날 수 있어 옳고 그름을 넘어서 지지해 줄 사람이 있다면 삶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솔직함을 표현할 상대가 어디에도 없고 내향적인 성향이면 우선 일기를 쓰거나 글로 자신을 표현해 보는 개인적인 길이 있습니다. 변함없는 유일한 친구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대화하며 스스로 솔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굉장한 친구를 하나 얻은 것과도 같습니다.


 원래 마음은 아주 어리석고 아이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근사해 보이는 성공한 사람도, 히말라야 동굴속에서 십 수년 명상한 사람도 예기치 않게 하이힐로 발등을 꽉 밟힌다면 화를 낼 수 있습니다. 파괴적인 마음이 들면 종이를 찢는다든가 운동을 한다든가 혼자 베개를 두들긴다든가 욕을 한다든가 해서라도 자신의 솔직한 에너지를 드러내는 것도 좋습니다. 분노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고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감정 중의 하나로 상황에 따라 가장 필요한 감정이라면 분노 또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타인을 해치는 분노가 아니라 타인을 일깨워 소통하기 위한 신중하게 깨어 있는 분노는 유의미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랑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못하는 것도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억압된 태도입니다. 감정의 억압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집어 넣고 사는 것입니다. 감정이 폭발할 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왜 억압하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기회입니다. 억압된 감정은 신체의 어느 부위에 응어리된 에너지를 만들어 전체로서의 자존을 회복할 기회로 삼으라는 뜻으로 병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많이 울고 많이 웃는 것이 내면의 마음 에너지를 풀어주고 자유로운 감성을 일깨우는 좋은 방편입니다.


 40대 아저씨만 되어도 하나같이 잘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긴장과 목적의식이 본연의 인간 모습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억압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감 혹은 분노 혹은 미움을 억압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정당치 못한 화를 내었다면 사과하고 내 모습을 인정합니다. ‘나 그런 놈이야. 너가 잘못이지.’가 아니라 ‘우리는 화가 많이 쌓일 수 있었지. 원인을 찾아 인정하고 환경과 내 마음을 잘 돌보아야겠어.’ 하는 마음으로 화를 낸 기회를 유용하게 활용합니다. 

 타인과 감정 교류가 서툴거나 쌓인 것이 많아서 나르시스트적인 에고가 강화되었다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 스스로 명상과 사랑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길도 많습니다. 더 나아가 이때 마음공부와 운동, 요가, 명상등을 차분히 배워보는 것도 적절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나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무언가를 억압하고 긴장하며 참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없다면 대상에 의지하기보다는 영화, 음악, 책을 통해 많이 울고 웃을 필요가 있습니다.

 울음은 웃음보다 의식이 가슴으로 깨어나는 체험이므로 부끄럽거나 쑥스러워도 감정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첫 발자국입니다. 삶을 전환하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이 많아지는 경험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또한 웃는 것도 기쁨의 에너지와 조응하는 경험이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없이 즐거운 장면을 떠올리며 크게 웃는 것도 에너지의 긴장을 활기 있게 해줍니다. 살아있는 동안의 모든 감정을 즐기고 감정에서 자유로운 것이 진정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환경에서 억압되어 온 것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알아차리는 것부터 훈련하고 상대에 의식 정도에 맞추어 자신을 설명한다면 불통이었던 타인과도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감정을 진실된 의식과 결합된 하나의 감정으로 존중하면, 타인도 그 감정을 존중하게 됩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의식과 하나가 된 진실됨이 중요합니다. 내 감정을 스스로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이중적 태도는 결국 상대의 비난과 의심을 합리화하도록 돕게 됩니다. 잘못은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소통을 존중하면 마음 세계도 한 차원 성장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과 간격을 유지하도록 호흡과 좋은 책들로 지성의 힘을 일깨우는 것은 내 감정세계를 사랑과 자유의 의식 쪽으로 열고 나아가는 기회가 됩니다.

훌륭한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감정과 느낌까지 변하지 않는다면 불완전한 것입니다. 유명한 스승들이 강의를 할 때 내 가슴이 편해지고 자유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잔뜩 굳어지게 만든다면 그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지 전체적인 내면화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나의 겨울 정원, 너무 더우니 그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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