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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8)

나를 파악하는 다양한도구들

1-4. 사주와 별자리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선택했고 지금도 선택하고 있는 신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는 원치 않았는데 태어났다거나 이 운명은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씨앗이 없이 저 나무가 생길 수 없는 자연의 법칙 속에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유의지가 없이 선택당했다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므로 마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경향이 많겠지요. 마음은 자신이 타고 갈 운명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할수록 ‘내가 이런 삶을 선택했을 리가 없어.’ 하는 마음이 크고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에너지의 일부이고, 중요한 내 삶의 선택은 결국은 내가 해온 것임을 잘 관찰해보십시오. 어떤 조건 속에도 인간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마지막 결정은 우리 자신이 해왔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핑계를 수 백가지 찾아낼 수는 있으나 오늘의 나의 인격이 미래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과 마음의 파동을 만든 것은 나 자신입니다. 이 파동은 다음 생에서 우주에 그대로 존재하여 결국 다음 생의 내 모습과 흐름을 선택하곤 합니다. 이는 조화로운 에너지의 표현이며 마음에너지의 상태와 수준이 내 미래를 만들어내듯 과거 또한 그러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현생에서만이 아니라 전생이 있다는 가정을 하고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소위 나라고 하는 육체와 마음이 그 시간에 태어난 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이라고 추정해 보는 것입니다. 



사주란 내가 태어난 해와 달과 시간을 통계학적으로 경향성을 분석해 낸 것이고, 여기서 사주를 믿고 믿을 수 없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통계학을 지금의 내 삶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도구로 도움이 된다면 참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주를 믿고 안 믿고 혹은 나쁘다 좋다는 이분법적 판단 보다는 내 인생의 흐름을 이해하는 도구로 참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리학은 타고난 기질을 설명할 때 '나는 양띠라 고집이 세. 나는 쥐띠라 성실한 편이야. 말띠라 활동적이지. 원숭이띠라 재주가 많아 등등' 타고난 해의 흐름을 보고 태어난 달과 날, 그리고 시를 통합해 한 인간의 흐름을 설명해 줍니다. 서양에서는 별자리를 보고 운명을 점치며 인도에서도 아이가 태어나면 브라흐만이 그 아이의 이마에 써 있다는 운명을 읽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별자리와 관상, 손금 등으로 운명을 파악하는 명리학이나 주역 등 오랫동안 나름 타당한 도구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활용치 못하면 쓸모없어지고 나쁘다는 것도 다른 조건에서는 좋은 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 마음 작용입니다. 타고난 흐름이란 것은 전생과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생의 삶만으로 ‘누구는 다 가진 것 같고 누구는 착한데도 너무나 불행하고 누구는 왜 꼭 그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며 삶이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태어나는데 계속 실패만 한다면 불공평한 운명을 한탄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길이 어디선가 어긋난 것을 알고 내가 잘하는 것을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 된 자세로 선택하는 것이 인과의 법칙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게 합니다. 

즉 인간의 본성이 자유이기 때문에 사주의 영향력을 의식적으로 알면 알수록 벗어나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의식의 힘으로 깨어난 만큼 타고난 기질과 사주의 악영향을 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다루고, 이해한 만큼 내가 주인이 되어 갑니다. 



 예를 들어, 사주에 수 기운이 많은데 정서적으로 고립되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사람과 만나는 직업을 택한다던가, 역마살이나 화개살이 있다면 오히려 여행과 인기를 얻는 길을 선택하면 길이 열리는 이치와도 같습니다. 백호살에 괴강살까지 있어 강한 성품에 고집도 있다면 군인이나 경찰이 되면 리더쉽이 발현되도록 하며, 은둔살이 있어 남과 어울리기 힘든 사람은 그 기회를 활용해 작가가 되거나 마음공부를 하는 것도 좋은 길일 것입니다. 공부에 관심이 없지만 자연이 좋고, 게임이 좋은 사람은 획일화된 교육과 강요된 부모의 의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질에 맞는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는 방황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찍부터 스마트농업 혹은 화훼, 양봉 등의 연구직을 선택하거나 농사를 짓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을 자연스럽고 알차게 보내는 길이며 성공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의지와 의식이 깨어나면 점차 인과의 법칙에서 자유로워져 환경에 휘둘리는 마음이 중심을 잡아 좀 더 행복해집니다. 운명이란 것은 내가 이 생에서 배우고 누리고 즐기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1-5. 전생이 있다면


 사주나 별자리 등과 함께 자기 이해의 방법으로 전생이론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휘튼 박사의 책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와 고전인 ‘티벳사자의 서’ 등을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발견됩니다. 의식은 몸과 분리되어도 영원한 존재이며 의식 그 자체는 빛과 행복감이란 것입니다. 

 전생이론은 윤회사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기독교인과 미국, 유럽인들조차 전생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생을 이해하려다 보니 교리를 넘어선 통합된 가능성으로 전생을 믿는 경향이 확산되어, 요즘은 동양보다도 서구학자들이 사후세계, 전생, 최면 등을 연구하여 많은 책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믿음의 문제는 차치하고, 단순히 이번 삶만으로 불평등과 우연 같은 다양한 사건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으니 언제인가 씨앗을 뿌린 결과이리란 합리적 추정으로 나를 이해하는 도구로써 의미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사후세계를 거치면서 지구로 돌아오는 이유는 다양한데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물질화된 육체를 통해 마음 세계를 경험하면서 부족한 배움을 깨우치기 위함이란 설이 유력합니다. 예를 들어 라즈니쉬 오쇼의 경우 700년을 기다려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났다는 고백을 합니다. 물론 오쇼에게는 할머니가 절대의 긍정 속에서 오쇼를 지지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서적 내 어린시절의 황금빛 추억) 

 전생을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조적으로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혹은 전생에 사람을 많이 죽여서.....  혹은 전생에 너가 원수라서.....'  등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곤 합니다. 지금은 전생체험과 최면치료가 미신이 아닌 심리학적 치유방편으로 활용될 만큼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심리적 장애가 심각하게 극복되지 않는다면 활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나하타챠크라가 활성화되어 신비체험의 문에 들어서면 전생을 스스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 의식이 경험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전생이 있다는 것은 다음 생이 있을 것이란 결론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심은 씨앗이 행복과 기쁨의 에너지였으며 자비와 사랑과 자유로 살았다면 그것이 돌아올 것이며, 공격과 불행을 만들며 살았다면 또한 당연히 그것이 돌아올 것입니다. 

자업자득과 인과응보는 지금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변함없는 법칙입니다. 마음의 세계란 본래 이런 흐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정신을 차리고 침착을 유지하려 노력해 나쁜 일이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이때 부정적인 마음에 동일시되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수록 나쁜 일은 증폭됩니다. 가볍게 지나가거나 자신의 본래 마음으로 돌아와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지혜의 마음을 키워갈 때입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마음이 긴박하게 되면 마음상태가 해결책보다는 악순환의 상황을 창조하게 되는 것을 우린 자주 보게 됩니다. 이것을 우린 운명, 혹은 팔자라고 단순화시켜버리고 무의식적 체념을 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인간을 이롭게 하는 방편으로 사고와 삶의 지평을 확대하고 나를 이해하도록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가 되면 마음의 갈등을 내려놓고 수용하고 바라보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내가 선택한 흐름은 이 삶을 살아가는 도구로 사용해가는 것입니다.

 운명이라 하지만 마음은 내가 사용하는 도구이며 의식이 주인이 되어갈수록 운명으로부터도 크게 지배당하지는 않는 ‘참나’가 있습니다. 모든 악운은 나라는 작은 에고에 갇힌 무지와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게 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참나를 지켜가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성찰은 나를 이해할수록 교만하지 않게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의 굴레에서 통찰력있게 자유를 향해 한 발 나아갈수 있게 도움을 주는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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