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고리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대학 시절, 한 문학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시대의 큰 줄기라는 게 있고, 작가는 그 흐름을 따라가려고 글을 쓰면 오히려 놓치게 된다고. 그저 자기가 쓸 수 있는 글, 자기가 쓰고자 하는 글을 계속 써 나가면 어느 날 시대와 만나게 된다고.



와, 너무 멋지잖아. 나는 그 말을, 글과 시대가 만나 반짝! 하는 그 접점의 이미지를 소중히 간직하며 살았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쓰자. 그러면 언젠가 세상이 나를 만나줄거야.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대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란 뭐지? 소설 습작을 할때는 좋아하는 작가들의 스타일을 흉내도 내 봤고, 감성적인 어투로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트라우마도, 상처도, 인생의 굴곡도 없는 평범하고 자기 중심적인 여자애는 도대체 어떤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선생님의 말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선생님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내가 시대와 굳이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시대와 만난다는 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치를 다루었다는 것일테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가치를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에 가까울테다.)



왜냐하면,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글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면, 그냥 그걸 겪었기 때문이다. 내가 미치지 않고 남이 보기에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내 정신이 내가 만난 글, 소설 속에서 미친듯이 죽이고, 썰고, 뛰고, 땀흘리고,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니까. 단점이 있다면 이런 감정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에 다시 이메일을 뒤적거리고, 책을 펼쳐 또 다른 구절을 찾게 된다는 거.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는 거.



고조선에서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곧고 굵은 선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뻗어나가다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지금도 계속 위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곧고 굵은 선. 내가 대한민국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이다. 경제 발전.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모두’라는 글자에 여성, 거지, 아동,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노인, 못 생긴 사람, 뚱뚱한 사람, 돈 없는 사람, 공부 못 하는 사람, 개, 고양이, 동물, 식물은 포함되지 않는.


그러니까, 그 선은 이제 내 알바가 아니다. 나는 그 선 아래에 수없이 외면당하고 떨어진 점들을 만난다. 그 점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내 나름대로 이어 본다.



글은 어디론가 뻗어나가서 독자들을 만난다. 그 글은 독자에 의해 새롭게 편집되고 해체되고 왜곡된다. 어쩌면 그게 글의 본질이다.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것.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잘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정답을 알고 있고, 그 답에 접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더라도. 나는 내 식대로 읽고, 내 식대로 써 나간다. 그게 유일하게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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