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은 아니지만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퇴근 후, 깜깜한 밤에 혼자 앉아서 타자를 칠 때,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글을 써 나가면 마치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날 김영하 작가의 이 한마디는 거기 있었던 우리 모두를, 특히 제일 뒷자리 구석에 앉아있던 나를 정확히 우주의 한 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와, 글쓰기란 전혀 다른 세계를 떠돌며 여행하는 거구나. 내가 가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곳으로. 글쓰기가 그렇게 즐거운 일이었다니! 나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글쓰기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날이 떠오른다.

그 대학생은 어찌어찌해서 아이 둘을 낳은 아줌마가 되었고, 이제 나에게 글쓰기란 "조용히 하고 얼른 자."라는 목소리로부터 시작한다. 뭔가 쓰고 싶어서 창은 열었는데, 커서는 깜박이며 나를 재촉하고, 아이들은 서로 먼저 이를 닦을 거라고 다툰다. "잠깐만, 이거 자르기만 하면 돼."라던지 "아직 가방 안 챙겼어."라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첫 문장을 시작한다. "엄마는 왜 안자?"라는 물음에 괜히 신경질이 난다. "엄마 지금 이거 하고 있잖아. 가서 먼저 누워."


'깜깜한 밤에, 혼자' 여야 글쓰기가 열어주는 '우주'를 맛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틀렸다. 내 글쓰기는 아이들의 칭얼거림과 방금 쓰려고 했던 단어도 기억이 안 나서 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는 마음의 안식 같은 건 아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길도 아닌 것 같다. 이제까지 김영하의 저 문장에 매달렸고,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싶었지만. (사실 지금도 그런 순간을 기대한다. 글을 쓰면서 형형 색색의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그 순간을!) 하지만 내 노트북 옆에는 아이들의 문제집, 연필, 지우개 가루가 흩어져 있다. 그러니까, 내 글은 지우개 가루와의 경쟁에서 시작된다. 저 가루를 치우고 잘 것인가, 뭐라도 한 줄 더 쓰고 잘 것인가.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글을 다다다 작성하고 노트북을 닫는다. 퇴고는 아이들 옆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한다.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눈감아. 내일 아침에 얘기해."라는 말과 함께 나는 글을 훑어본 뒤, 앞부분을 지운다. 오타를 수정하고, 뭔가 맞지 않은 단어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이의 끝맺지 못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래, 글쓰기는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아이의 '이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잖아.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이는 친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뭐하고 놀았는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 알겠어, 빨리 자. 엄마도 잘 거야. 아이는 믿지 않는 눈치지만 고맙게도 눈을 감아준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면 나는 다시 핸드폰을 켠다. (켤 때도 있고, 그냥 잠들 때도 있다)


나는 '글'이 부럽다. 그게 뭐길래 사람들이 모두 다 '잘' 쓰고 싶어 하고, 너도 나도 (특히 나!) 쓰고 싶어 하는지. 왜 내 생각을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지. 그리고 왜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는지. 그러면서도 좀 더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 강의를 듣고,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지. 그저 확실한 건 글쓰기는 나에게 관심이 없지만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재우면서 마무리를 어떻게 끝내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고민과 발행 전의 망설임과 에라 모르겠다 누르는 손가락이 지금, 나의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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