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글로 쓸 수 없는 소소한 일들, 내 감정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아니, 글은 이미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행해도 될까?’ 라는 망설임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일상에서 자주 ‘멈춤’을 경험한다. 남자아이들의 행동과 말투에서. ‘왜 약자를 저렇게 괴롭히지?’ 남편의 강압적인 태도와 어투에서. ‘혹시 가스 라이팅 아니야?’ 엄마의 넋두리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해?’ 불쑥불쑥 화가 났다가 그 자리에서 뭐라 대응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쉽게 우울해진다. 예전 같으면 철없는 말일뿐이라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나를 달랬을 것이다.
나는 욕이 싫다. 나를 향한 게 아니라고 할지라도 욕을 듣는 것도 싫다. 한 때는 세 보이려고 먼저 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게 내 영혼을 엄청나게 갉아먹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하지 않았다. 내가 학생들의 욕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말했을 때, 직장 동료들은 되려 내가(직접적으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예민하다고 여겼다. 자신들에게는 그런 적이 없다면서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따지고 드냐고. 사춘기 아이들 언어 습관이 원래 그런 걸.
그럴 때는 연약한 척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남자애들이 세 보이고 싶어 그러는 거니 어른처럼 대해주라고. 당시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한 선생님은 자기는 이제 나이 들어서 어디에서도 여자로 봐주지 않는데 부럽다고도 했다. 왜 그게 부러울 일이지? 결국 만만해서 그렇다는 거 아닌가. 나는 선생님이고 싶은 거지 여성이 되고 싶은 게 아닌데.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력감 때문이다. 목소리 큰 그 남학생은 이미 교실의 작은 독재자였다. 그 반의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그 학생이 ‘허락’하면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 심심하다 싶으면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말싸움에 자신 없는 나는 져 주는 척하거나 무시했고, 그 학생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어떨 때는 다그쳐도 봤고, 어떤 때는 최대한 약자 인척 했고, 동정심을 유발하려고도 해 봤다.
나는 친절한 ‘여’ 선생이고 그게 나의 장점인 이 세계. 이곳은 ‘명쾌하다.’ 내가 괴로워하는 문제는 그에 맞는 ‘해결책’이 있다.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건 내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들에게 삶의 무게는 똑같지 않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나보다 더 힘든’ 그들은 날을 세운다. 이 정도도 못 해내면서 도대체 뭘 하겠다고 그러니. 그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중등? 고등에 비하면 귀엽지. 나는 이미 ‘아무것도 아님’ 때문에 죽도록 노력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되면 포기를 선언한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이제 글을 쓰는 나는 분노하고, 옳지 않음을 생각하고, 저항한다. 그때의 무력한 나를 글로 쓰면서 건져 올린다. 그건 그렇게 명쾌한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야. 사람의 힘듦은 모두 다른 거야. 너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