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내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문장은 '퇴사만 하고 나면'이라는 서두로 시작했다. 퇴사만 하면 실컷 낮잠을 잘 거야. 퇴사만 하면 오전엔 꼭 필라테스를 갈 거야. 퇴사만 하면 묵혀둔 책들을 다 읽을 거야. 퇴사만 하면 글을 '매일' 쓸 거야.
그렇게 바라고 원해마지 않았던 퇴사를 한 지 10개월 13일이 지났다. 나에게 출근할 힘을 줬던 '퇴사만 하고 나면'이라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미래의 일이 현실이 되어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예상했겠지만) 그때 내가 상상했던 부지런한 나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건 몰라도 3개월간 꾸준히(라고 쓰고 꾸역 꾸역이라고 읽는) 책 원고를 썼고, 책 쓰기 모임에 속해있지 않으면 하지 않을 것 같아 출간기획서까지 만들었다. 이제 글을 모으고 정리해서 출판사에 투고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까지 썼던 글을 한 파일로 옮기는데, 그동안 초고를 쓰고 합평받고 고치기를 반복했던 글인데도 그 글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한글파일의 창을 닫으며 '아, 망했다.'
라고 생각하고 한 달(하고도 십여 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퇴고를 좀 미룰까, 이다. 아이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퇴고해야지, 영어 시험이 끝나면,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까지 발행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내가 썼던 글을 다시 마주하는 게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감정에 휩싸인 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 가장 어리고 원초적인 나 자신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때는 신나게(?) 썼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성을 되찾은 눈으로 보니 진짜 건질만한 문장이 없다.
동시에 자꾸 그런 마음이 든다. 그래, 그동안 쓴 것만으로 만족하자. 너의 일은 거기까지니까 그냥 이 글들은 여기 묻어두자.
이 마음을 떨치기 위해 기록을 남겨둔다. 나에게는 퇴고를 기다리고 있는 글들이 있다. 나는 하기 싫은 마음을 ()로 접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퇴고를 해 나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