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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씨 Nov 19. 2020

#망한식물일기_ 더피고사리

통풍과 습도로 인해 사망

'얘는 식물 처음 키우는 사람도 키울 수 있나요?'

'네, 더피고사리는 초보자들도 쉽게 키울 수 있어요.'




더피고사리를 만난 것은 2월 서촌의 한 식물 가게였다. 매우 매력적인 가게로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밖에 놓인 식물들에 눈길이 가는 곳이었다.


내가 올해 초에 인턴으로 일하던 서촌의 건축사무소 직원들은 그 가게에 가끔씩 가서 식물이나 흙 같은 것을 사 왔다. 사무실에는 밖에도 안에도 수많은 식물들이 있었다. 직원들이 식물을 심고, 물 주고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식물들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내 첫 식물 더피 고사리


더피고사리를 만나다


평일의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바로 지하철로 가는 대신, 식물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는 아저씨 한 분이 게셨다. 나는 한참을 구경한 후에 아저씨에게 식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도 키울 수 있는 식물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몇몇 식물들을 보여주시면서 나에게 식물들을 추천해줬다. 그중에는 '더피고사리'도 있었다. 


내가 아저씨한테 말한 조건은 집이 북향이어서 빛이 잘 안 들어오고 통풍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햇빛이 적어도 되는 더피고사리를 추천해주셨고, 나는 자신만만하게 더피고사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새순이 자라다


아저씨가 말씀해주신 대로 겉흙을 매일 체크하며 겉흙이 마르면 물이 화분 밑으로 넘치게 주었다. 그러자 곧 새순들을 볼 수 있었다. 새순을 봤을 때는 너무 기뻤다. 이미 머릿속은 더피고사리가 잘 자라면 다른 화분을 사서 2개로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더피고사리를 올리자 바로 메시지(DM)가 왔다. 

'와, 이 식물 진짜 이쁘다.'

'식물 잘 자라면 내가 포기 나눠서 나눠줄게!'

이렇게 호언장담을 했지만 결국 더피고사리를 나눠주는 일은 없었다.



상태가 이상하다


더피고사리는 분명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식물이라고 했는데 내 더피고사리는 점점 잎 끝이 말라갔다. 찾아보니까 과습이어도, 물이 부족해도, 공기 중에 습도가 낮아도 전부 잎 끝이 마른다고 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베란다에 완전히 내놔서 빛을 많이 쐬게도 하고, 물을 많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작은 가습기를 사서 더피고사리 바로 옆에 틀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더피고사리는 점점 더 말라갔다. 자라나는 새순들도 성체가 되지 못하고 말라갔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새순이 자라지 않았다. 



결국 사망했다


더피고사리를 키우면서 다른 식물도 살 겸 종종 그 가게에 들렸다. 가게에서 더피고사리가 죽어간다고 이야기하니, 더피고사리를 화장실에 두거나 물을 주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은 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놔두면 살아날 수도 있다고 하셔서 집에 오자마자 가게의 투명 비닐봉지로 덮고 분무기로 물도 뿌린 뒤 베란다에 빛이 잘 드는 곳에 놔뒀다. 하지만 더피고사리는 살아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통풍과 습도가 문제였던 것 같다. 홍대의 자취방이 식물을 키우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방은 창문을 열어도 통풍이 잘되지 않고, 너무나 건조했다. 


선풍기라도 매일 틀어줬으면 더피고사리는 잘 자랐을까?


어쨌든, 더피고사리는 통풍과 습도로 인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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