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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씨 Nov 25. 2020

#망한식물일기_ 아라리아

벌레와 무지로 인한 사망

가장 오른쪽을 보면 수척해진 더피고사리를 볼 수 있다.




더피고사리를 사고 나서 나는 식물을 정말 잘 키울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래서 1-2주마다 식물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두 번째 식물은 무늬 홍콩야자, 세 번째 식물은 아라리아였다.


어느 토요일, 할 게 없었던 나는 서촌의 식물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라리아를 발견했다. 작은 화분에 매우 높은 몸체를 가졌으면서 잎은 톱날처럼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아라리아의 매력에 빠져버린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장님께 물어봤다.


"사장님, 이 식물은 초보자도 키우기 쉽나요?"

"그 식물은 초보자는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여기 앞에 있는 식물들이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들이에요."


하지만 이미 아라리아는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다른 식물들은 아라리아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었다.


"이 식물로 할게요."




아라리아, 잘 자라다!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아라리아는 너무나 잘 자랐다. 이미 시들시들하면서 끝이 메말라가던 더피고 사리와 다르게 잎들도 쌩쌩하고 위에서 새순도 계속 자랐다. 그래서 나의 자신감은 점점 더 상승해만 갔다. 매우 크고 풍성했던 아라리아는 내 방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잎이 떨어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떨어지는 잎들이 많아졌다. 아라리아를 툭툭 치면 잎이 매달린 줄기들이 힘 없이 떨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물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습을 조심한 나머지 물을 너무 안 줬다고 생각해서 물을 처음보다 자주 주었다.



잎이 후두두두 떨어지다.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잎이 떨어지는 것은 물 부족보다는 과습때문이었나보다. 아라리아의 잎이 떨어지는 속도와 양이 증가해버렸다. 그리고 잎들이 말라가더니 점점 둥글게 말리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위에 새순은 계속 자라고, 떨어지는 잎들은 전부 아래의 잎들 뿐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회생의 기회는 남아있었다.



아라리아, 다시 잘 자라다!


첫 고비를 넘기고 물을 매우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빛도 들지 않고 통풍도 되지 않는 내 방에서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텀을 인터넷에 나와있는 것들보다 훨씬 길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과 함께 아라리아는 무탈히 다시 잘 자라기 시작했다. 물론 아랫잎들이 힘없이 떨어지는 것과 잎이 마르는 증상은 유지되었지만 전에 비하면 매우 조금이었고, 위에는 풍성하게 자랐다.



벌레야, 네 이름은 뭐니?


전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잎이 떨어지고 말라가는 현상이 계속되자 다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라리아를 아주 자세히 관찰하니 아주 얇은 흰색 거미줄 같은 것들이 잎들 사이에 잔뜩 있었다. 평소에 집에서 어둡게 활동하다 보니 물을 주면서도 거미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식물에 벌레가 생기는 것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방 안에서 키우는 내 식물에 벌레가 생길 줄이야. 가끔 베란다에 놔둘 때 벌레가 생겼던 것일까? 어쨌든 나는 급하게 벌레를 제거하기 위해 핸드폰을 켜고 식물과 벌레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 아라리아에 생긴 벌레는 '응애'라는 벌레로 추정되었다. 아주 얇은 거미줄과 잎 뒤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점들은 '응애'의 설명과 비슷했다. 열심히 퇴치 방법도 검색 결과, 살충제 뿌리기, 잎을 하나하나 닦아주기, 샤워기로 잎에 벌레들 떨어뜨리기가 있었다. 


나는 바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물티슈를 뽑고 잎을 하나하나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5분쯤 했을까? 이 속도면 몇 시간이 결릴 것 같다는 예상과 함께 이 작은 잎들을 하나하나 닦을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리라아를 화장실로 옮기고 샤워기를 손에 들었다.



샤워기를 사용하다.


샤워기로 아라리아의 잎에 물을 뿌리니 거미줄과 벌레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샤워기의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벌레들은 모두 떨어져서 사라졌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남은 응애를 물티슈로 제거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아라리아, 죽다.


하지만 샤워기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날부터 약 10일 정도에 걸쳐서 아라리아의 잎들은 우수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잎이 떨어지는 속도는 이전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아래부터 맨 위의 잎까지 매일같이 수많은 잎들이 떨어졌다.


그리고 결국 아라리아는 몸통만 남은 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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