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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씨 Dec 31. 2020

#망한식물일기_바질

날이 추워져서 사망

"바질을 길러서 바질 페스토를 만들겠습니다!!"




닭날개 고추장 조림 그런데 바질을 곁들인


인터넷으로 구입했던, 하나의 포트에 3개씩 심어져 있던 바질들은 모두 추위로 인해 사망했다. 당연한 사망이지만 바질이 #망한식물일기에 올라온 이유는 두 가지다.


1. 바질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잘 성장하지 못했다.

2. 바질을 사용한 게 위 사진의 요리 1번이 끝이다...


내가 직접 키운 바질로 바질페스토를 만들겠다던 야심 찬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바질을 사다!


루꼴라를 심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식용식물에 대해서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이 끝나가던 9월 초에 심을 수 있는 식물을 찾다가 바질을 발견했다.


바질은 더운 날씨에 잘 자라고, 햇빛을 좋아하는 허브였다. 회사의 옥상에서 기르기에 시기도, 위치도 너무나 좋았다. 바질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보니 바질이 너무 잘 자라서 따도 따도 바질 잎이 계속 생긴다는 글들이 보였다. 나는 바로 바질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초록창 쇼핑을 이용해서 바로 모종 3개를 구입했다. 



바질 도착!

9월 8일. 바질 모종 도착


인터넷으로 식물을 시킬 때는 언제나 마음 한편에 걱정이 자리를 잡는다. '식물이 다 상해서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회사에 도착한 바질들은 모두 엄청나게 꼼꼼히 포장되어 있었고, 바질들은 모두 쌩쌩했다.


그래서 바질들을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다가 두 포트는 기다란 직사각형 플라스틱 박스에, 한 포트는 토분에 심었다.



바질 과습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9월 14일. 자라는 바질들


분명히 내가 봤던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에서는 바질은 물 주기를 잘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까지 많은 식물들을 과습으로 떠나보냈기 때문에 과습에 민감하기도 했던 나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점심, 퇴근 직전 하루 세 번씩 꼼꼼히 바질들을 살폈다. 그리고 과습을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웬걸. 내가 옥상에 심은 바질들은 전혀 과습에 민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물이 부족했다. 나는 과습을 피하기 위해서 물을 2-3일마다 주려고 했는데 내가 잠깐 보지 않으면 잎들이 마르기 직전까지 시들시들해졌다. 한 번은 아침에 쌩쌩하던 잎들이 저녁에 보니까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흐물거리고 있었다. 바로 물을 주었더니 다음날 아침 다시 쌩쌩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때부터 물을 하루마다 주기 시작했다.



너네는 왜 안 자라?!

9월 14일. 자라는 바질들


오해하지 마라. 잘 안 자랐던 것은 플라스틱 박스에 넓게 넓게 심어주었던 바질들이었다. 작은 토분에 같이 심은 3개의 바질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분명히 같은 옥상에, 그것도 바로 옆에 같이 놓여있고, 같은 흙인데 왜! 토분에 심은 바질들만 잘 자랐을까?


토분에 있는 바질들도 빠르게 무럭무럭 자랐다고 하기에는 힘든 속도였다. 하지만 가끔씩 보면 키가 커가는 것이 보였고 새로운 잎들이 자라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플라스틱 박스에 심은 바질들은 성장 속도가 토분보다 3배는 느렸다. 이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옥상이어서 햇빛도 충분하고 물도 잘 말랐기 때문에 플라스틱 박스가 문제일 것 같지는 않은데... 넓게 심어서 오히려 잘 자랄 것 같던 플라스틱 박스의 바질들은 너무도 느렸다.



토분에 구더기가 생겼다!


다행히 다른 식용식물들과 달리 벌레가 생기거나 하는 문제는 없었다. 나는 매일 출근해서 옥상에서 바질 향을 맡으며 기뻐했다. 물을 말라서 시들시들할 때는 향기가 사라졌지만 다시 물을 먹고 쌩쌩해지면 향기가 돌아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질을 심은 토분의 흙이 말랐다 만져보는데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다른 곳의 흙은 그냥 촉촉한데 유독 한 군만 키세스 초콜릿(어렸을 때 먹어봤을 법한 은박지로 싸인 작고 원뿔형의 초콜릿)처럼 흙이 뭉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꺼내서 부셔보니 그곳에는 흰색 구더기들이 꿈틀대기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바로 손을 떼고 잠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무젓가락으로 그 부분의 흙을 퍼서 버려버렸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흙을 여기저기 쑤시고 겉의 흙을 버리고 다시 채워 넣었다. 다행히도 바질에 벌레가 생긴 것은 그 한번뿐이었다.



그래도 먹기는 했다.

9월 26일. 첫 바질 수확


바질이 자라던 속도는 내 생각보다 너무 느렸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얼른 가지를 쳐서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자라지를 않으니 가지를 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요리를 해야 했기에 그나마 가장 많이 자랐던 바질의 잎을 수확했다.


그렇게 만든 요리가 맨 위에 있는 '닭날개 고추장 조림 그런데 바질을 곁들인'이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최강록 씨가 선보였던 요리이다. 항상 따라 하고 싶었는데 직접 기른 싱싱한 바질 덕분에 요리에 도전할 수 있었다. 요리는 대 성공이었다. 내 친구들 모두 매우 맛있다고 했고 그날 최고의 요리가 되었다. 요리에 대한 내용을 덧붙이자면 고추장 닭날개 조림에 바질 향이 곁들여져서 향도 신기하고 맛도 좋은 최고의 요리였다.



날이 추우니까 실내로 들어오자

11월 13일. 실내의 바질


11월이 되고 날이 추워지자 바질들이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이 보였다. 이미 플라스틱 박스의 바질들은 죽어있었다. 급한 대로 토분의 바질들을 실내로 가져왔다. 바질에게는 햇빛이 매우 중요하기에 실내에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살리고 보자는 마음이 컸다.


바질들은 실내에서도 자랐다! 단, 속도는 밖에서의 1/2 -1/3배였다. 그리고 햇빛을 못 받아서 인지 바질의 향은 점점 줄어만 갔다. 성장 속도도 느리고 향도 나지 않아서 나는 결국....



바질을 놓아주었다.

12월 18일. 죽어버린 바질


마지막으로 가는 바질에서 외부라도 느끼게 다시 옥상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며칠 만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바질을 아끼지 말고 다 뜯어먹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당시에는 바질이 더 크고 풍성하게 자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잎을 함부로 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바질 농사를 통해서 바질에 대한 자신감은 생겨났다. 내년에 바질을 키운다면 7월쯤부터 키워서 바질 페스토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풍성한 바질은 내년을 기약하자.


어쨌든, 바질은 추위로 인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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