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 그 문장/프란츠 카프카, 《소송》
“어떻게 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나 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요구하지 않은 거지요?” 문지기는 남자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남자의 꺼져 가는 청력에 닿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한다. “이곳은 당신 말고는 아무도 입장을 허가받지 못했소. 왜냐하면 이 문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니까. 나도 이제 문을 닫아야겠군요.”
프란츠 카프카, 《소송》, 열린책들, 267p.
나는 보통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기보다는 대표작만 읽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찾아 나서는 편이다. 세상에 볼 책은 많고 아직 못 만나본 훌륭한 작가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한 작가의 작품은 눈에 띄는 대로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 그는 바로 프란츠 카프카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내게 꿈 자체를 서술해 놓은 듯이 보인다. 책을 읽고 나면 밤새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가 아침에 정신을 가다듬고 꿈속의 장면을 곱씹어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 내게 프란츠 카프카가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카프카는 뭔가 지나치다. 균형이 잘 갖춰진, 소위 ‘육각형’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내게 카프카의 작품은 미칠 듯이 매력적이다. 그의 책은 꿈이고, 나는 꿈과 같은 망상을 좋아한다. 망상에는 진실이 있다.
《소송》은 악몽이다. ‘시달린다’는 표현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꿈이다.
주인공 요제프 K는 내용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송에 시달린다. 어쩌다가 기소되어 끝없이 시달리다가 끝내 죽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소송》은 삶이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에게 죽을 때까지 끌려다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잔인한 우화다. 물론 1차원적으로 현대의 국가 통치 기술이나 법체계, 관료제의 불합리와 모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용한 부분은 요제프 K가 대성당에서 만난 사제에게 들은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만약 《소송》을 우화라고 한다면 우화 속의 우화인 셈이다. 카프카는 원래 이 우화 부분만을 〈법 앞에서〉라는 단편소설로 발표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사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소설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우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시골 남자가 ‘법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법의 안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한 것은 법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법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문지기가 서 있었는데, 그는 “아직은 안 된다.”며 남자를 막았다. 문은 열려 있지만, 문지기가 지키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문지기는 안쪽에는 자신보다 더 강한 문지기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남자는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그 문 앞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남자는 문 앞에 버티고 앉아서 문지기에게 끈질기게 부탁했다. 엎드려 빌기도 하고 환심을 사려고 뇌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문지기는 늘 “아직은 안 된다.”고만 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남자는 늙고 시력을 잃었으며, 죽음을 앞두게 됐다. 그때까지도 문지기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남자가 죽기 직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그는 문지기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모두가 법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나 외에는 이곳에 아무도 오지 않았나요?” 그러자 문지기는 위의 인용문처럼 이렇게 대답했다. “이 문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나도 이 문을 닫아야겠군요.”
개인에게 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또한 개인에게 법은 열려 있지 않다. 이상한 말이다. 헌법 1조 1항의 예를 들어 보자.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명제 같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먼저 시점이 이상하다. 헌법이 제정되는 그 순간 대한민국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인가? 그전에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민주공화국으로 변했다는 말일까? 그전에는 아니었다면 어떻게 갑자기 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원래도 민주공화국이었지만 다시 한번 재창했다는 말일까?
혹은 이런 의심도 생긴다. 여전히 민주공화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말이다. 헌법 1조 1항은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일 가능성은 없을까? 즉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니며 민주공화국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문구는 아닐까? 좀 더 깊이 의심해 보자면 ‘민주공화국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표명하는 모습을 드러내려는 의지’일 수는 없을까?
선언의 목소리도 의문스럽다. 저러한 선언을 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는 마치 《소송》 우화에 나오는 문지기 너머에 있는 문지기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치인이라고? 아니다. 그들은 그러한 설정을 떠맡은 자들이다. 소설로 치자면 내포 화자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법 안에 머물며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망상일까?
이것을 인간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은 아마 ‘살아라!’하는 명령일 것이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생육하고 번성하라!”이다. 법 체계에 대한 의심을 삶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갖가지 질문들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을까? 혹은 죽어가고 있을까? 산다는 것은 자의식을 유지하는 것일까? 혹은 유전자를 잇는 것일까?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명명한 목소리는 누구일까?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신은 어디에 있을까?
카프카는 답을 주지 않는다. 요제프 K는 1년 동안이나 소송에 시달리다가 결국 행정절차대로 죽임을 당한다. 그는 끝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심장에 칼이 찔린다. 그리고 “개 같다!”고 내뱉는다. 인생이란 개 같은 것, 그것이 온 생애를 통한 주인공의 깨달음이다. 카프카의 말 대로라면 우리는 평생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개 같이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