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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Apr 13. 2023

전교 꼴찌, 전교 1등 하던 날!

믿음의 결과

정확히 1년 동안의 공부로 성호는 반 29등에서 1등으로 성적이 수직 상승했다. 그리고 3학년에 올라가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뒤, 담임선생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성호 어머님이시죠?”

수화기 너머, 선생님이 잔뜩 흥분해 있었다.

“어머니, 성호가 전교 1등을 했어요.”

“네? 누가 1등을 했다고요?”

“어머니 아들 성호가 말이에요. 못 믿으시겠어요?”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못 믿기는! 못난 엄마인 내가 그나마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내 자식 믿어주기’인데 못 믿다니!

자꾸만 주책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릴 적부터 게임에 빠졌던 성호, 공부는커녕 학교 자체를 끔찍이 싫어하던 성호와 함께 힘들어하던 지난날이 떠올라 애써 참아보려고 해도 봇물이 터진 듯 눈물이 흘렀다. 아이를 믿어주고 또 믿어주며 용기를 주면서도, 꼬박 밤을 새우며 아이의 장래를 위해 가슴 졸이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울고 또 울었다. 아이 앞에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아이 뒤에서 섧게 울던 지난날들의 보상을 마침내 받은 것 같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가까스로 벅찬 마음을 다스린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리고 이른 귀가를 부탁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성호를 우리 가족은 꼭 끌어안아 주었다.


“성호, 축하해!”

“장하다, 녀석!”

“우리 형, 최고야!”

가족들의 축하에 성호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처음으로 1등 해본 건데 뭐. 앞으로가 중요하지.”


자신이 이룬 기적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고, 벌써부터 오늘이 아닌 내일을 준비하는 성호의 모습에 나는 다시 달아오르는 눈시울을 감추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불과 1년 반 남짓 공부해 3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당당히 전교 1등을 차지한 성호의 기적 같은 스토리에 학교는 떠들썩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특별반 학부모 모임에 꼭 참석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성호가 다니는 학교는 성적 우수 학생들을 저녁에 따로 모아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워킹 맘이었던 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을 못하고 있었다.

학부모 모임이 있던 당일, 용기를 내 처음으로 참석한 모임에서 엄마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성호 엄마가 누구야?”

무슨 일인가 싶어 웃으며 물었다.

“제가 성호 엄만데 무슨 일이세요?”

엄마들 시선이 온통 내게 쏠렸다. 무슨 일이기에 나를 빤히 보고만 있고 말을 안 하지? 고개를 갸웃했는데 잠시 뒤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성호가 1학년 때는 하위권이었다면서요? 어떻게 애를 가르치셨기에 1년 반 만에 전교 1등을 만들 수 있었어요?”


학부형들이 궁금했던 것은 성호의 교육 방법이었다. 1년 반 만에 꼴찌를 1등으로 만든 데에는 나만의 특별한 교육법이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어쩜 전교 1등 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자신도 1등이라는 기분이 드는가 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생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기분에 어깨가 으쓱해지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으스댈 수는 없는 일. 나는 여태껏 성호를 키워온 나만의 교육법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특별한 교육법이랄 게 있나요? 그저 성호를 믿어주고 또 믿어준 것밖에 없죠…….”


또한 성호는 친구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 공부도 못하던, 게임만 할 줄 알던 성호도 전교 1등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는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시켰던 것이다. 아이들은 성호의 공부 방법을 벤치마킹해 앞 다퉈 학습 플래너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서로서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모두들 책상에 자신의 목표를 적어 놓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교 역사상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호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수능시험 당일 극심한 컨디션 난조로 실패를 맛본 것이다. 나와 남편은 성호가 얼마나 실망할까 걱정이 앞섰지만, 성호의 시름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성호는 다시 힘을 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공부 오래 한 것도 아니잖아요. 학교 성적은 좋지만 아직은 조금 부족한 것도 같고, 아무튼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으니 재수 1년 하는 동안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호는 스스로 재수를 선택했다. 혼자 학원을 알아보고, 원하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 목표를 잡고 다시 힘을 냈다. 그 모든 것을 성호가 주체적으로 선택해 행동했다. 자신의 선택이기에 성호는 한눈팔지 않고 1년이라는 재수 시절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호는 마침내 연세대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비로소 성호의 멋진 앞날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성호를 대견스러워하는 것은 성적이 오르고 좋은 학교에 입학한 것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이 좋은 인생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일 수는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은가. 최고의 명문대를 나와도 실패하는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호는 공부를 통해 사람을 얻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던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고 스스로 노력해 성공했기에 성호의 주위에는 사람이 넘쳐난다. 예쁜 꽃에 벌이 모이듯, 노력하는 성호 옆에 멋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금도 성호는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수시로 연락하고 스승의 날이 되면 일부러 찾아가 약주 한잔을 대접한다. 심지어는 재수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선생님들과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친구들도 한국뿐만 아니라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 전 세계에 무수히 많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성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만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이제는 어느덧 성인이 돼 멋진 남자로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성호. 나는 믿는다. 성호가 앞으로도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삶의 곳곳에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나는 또 믿는다. 성호가 고난과 역경에 무릎 꿇지 않고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왜냐하면 내가 믿기 때문이다. 부모의 믿음은 아이에게 최고의 힘이다.


훈장처럼(?) 남아있는 당시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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