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온 Oct 21. 2020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영화 '82년생 김지영'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힘듦에 건네는 위로


개봉날 바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 책은 사실 막연한 두려움에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니, 외면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려나. 안 그래도 힘든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사실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갖은 논란 속에 애정 하는 배우가 여러 말을 들으며 개봉하는 만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개봉날 지표로 여러 가지가 평가되는 세상이기에 아주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다. 봐야, 알아야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영화를 본 날 바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먹먹함이 나의 온 신경을 가득 채운 듯한 기분. 슬프거나, 화나거나, 가 아닌 먹먹함. 글을 쓰다 보면 그 먹먹함에 매몰되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온전히 그 감정을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는 정말 평범한, 보통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아내를, 며느리를 대하는 가정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거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집도 아니다. 적당히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고, 부모님도 적당히 살고 계신 그런 적당한 어느 평범한 집, 그 안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지영은 '빙의'로 보이는 행위를 빌려 쌓였던 하고 싶었던 말들을 풀어낸다. 지영이 다른 사람이 된 순간,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훌쩍였다.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은 일상의 지영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 아닐까. 익숙함을 무던하게 풀어내다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익숙함을 깨뜨릴 때, 관객의 쌓인 마음도 같이 터진 듯 했다.


영화를 보기 전, 지영의 남편이 좋은 남편이고 며느리를 엄청 걱정하는 시댁이던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나오냐는 식의 글들을 여럿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되려 그 말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지했던 남편이었다. 현실을 겪고, 아내가 아프고 나서야 아내의 환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바뀌어가는,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던 남편의 모습이었다. 시댁도 그 세대가 그랬듯, 며느리가 명절일 하는 게 당연하고 아들이 며느리 편을 들고 부엌일을 하는 게 싫고, 아들의 육아휴직 이야기에 울컥하는, 그 또한 현실적이고 흔한 시댁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딸들을 구박하진 않지만 아들 아들 하는 아버지 가족이 있는 지영의 집까지. 특별하지 않은, 흔하고 현실적인 가족들이었다. 지내 온 시간의 다름 속에 서로가 몰랐던 현실과 마음, 그 모든 순간이 지영의 아픔으로 인해 공유된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작은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족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집에서 육아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함께 나온다. 나도 집에서 놀면서 애나 키우고 싶다, 애들이 있어 정신없다, 맘충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내뱉는 이 말들이 너무 일상적이라 더 날카로웠다.

사실 결말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희망적인 결말이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현실적이었는데 그 현실을 결말에서만 깨버린 느낌이랄까.


영화 내내 내가 앉은 좌석 라인 끝에 앉으신 중년 남자 어르신께서 훌쩍이던 소리는 영화관을 나오는데도 무겁게 남아 있었다. 비난이 아닌 공감의 마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아버지의 비애는 공감하며 어머니의 비애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극장 안 모든 사람이 눈물을 보였던 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힘들다. 그 힘듦을 위로하는 영화로 보이길 바란다.




메모장을 뒤적거리다 1년 전에 쓴 이 글을 다시 보고 그때의 먹먹함을 잠깐 느꼈다. 영화는 나의 바람처럼 보였던가.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는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또 무수히 많은 사회적 사건들과 개인적 사건들이 얼기설기 엮였을 텐데, 그 모든 건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우리는, 나는, 공감과 위로를 받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장, 나의 1막도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