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집 아들딸이 가장 부러웠던 시절
제가 학교에 다닐 때 엄마는 제 학용품을 보며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엄마 어린 시절에는 종이 질이 너무 안 좋아서 지우개질 하다 보면 종이가 찢어지곤 했다고 합니다. 지우개 역시 별로 성능이 좋지 않아서 더럽게 회색 빛으로 물들이기만 하고 별 일은 못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좋아진 필기구' 역시 요즈음을 생각해 보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불과 십몇 년 전만 해도 물자가 지금보다는 더 귀한 느낌이었는 데다가, 워낙 필기구를 좋아하니 새로운 필기구를 사거나 선물 받을 때마다 너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학교에서 '연필'만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샤프를 쓰면 글씨체가 나빠진다는 것이 이유였죠. 초반에는 아빠가 열심히 칼로, 얼마 후에는 연필깎이로 학교 가기 전에 열심히 연필을 깎는 것이 중요 일과였습니다. 깜빡하고 안 깎으면, 다음 날 그 당시에는 너무 싫어했던 뭉퉁한 느낌의 연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운이 안 좋으면 그렇게 쓰다가 흑연이 다 닳는 바람에 연필의 나무 부분과 종이가 닿는 미묘하게 기분 나쁜 감촉을 느껴야 하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샤프를 한 번도 못 써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빠가 동생과 저한테 머그컵 모양 장식이 달린 샤프를 하나씩 선물로 해주셨거든요. 처음으로 써 보는 샤프가 어찌가 신기한지! 꽤나 큰 언니가 된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샤프 심도 뚝뚝 잘도 부러지고는 했지만요.
한 동안 좋아했던 것 중에 '카트리지 연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연필심이 들어간 애들이 플라스틱 연필 안에 들어가 있었고, 하나가 뭉툭해지면 그것을 빼내어서 뒤에 있는 구멍에 맞추어 꽉 누르면 다른 뾰족한 연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연필은 앞에 캡이 있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그 탭도 예쁘게 장식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요 안에 있는 심들이 다 차 있어야지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아이들끼리 장난하거나 뭐 하다가 심 하나를 잃어버리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죠. 그래도 내가 깎지 않아도 되는 뾰족한 연필심과, 예쁜 외관 그리고 왠지 특별한 사용법 때문에 좋아했습니다.
연필의 단짝인 지우개도 역사가 깊죠. 아주 어렸을 때에는 동네에 있는 문구점에 파는 지우개라고는 파란색과 핑크색 정도의 선택지밖에 없는 '점보지우개'였습니다. 잘 부서지고 가루가 많이 나왔는데, 저는 지우개도 잘 잊어버리곤 해서 엄마가 가끔 데려가서 사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새로운 지우개를 사고 그 걸 또 사용하는 즐거움도 기억이 납니다.
커가면서 예쁜 지우개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예쁘기만 하고 잘 안 지워진다는 점이었는데, 지우개를 뜯고 얼마간은 꽤나 잘 지워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흑연이 번지기만 하고 잘 안 지워지곤 했습니다. 또 대왕 지우개도 있었는데 엄청나게 큰 녀석이었습니다. 지우개 도장을 만들 때 사용하곤 했던 녀석인데 한 동안 유행이어서 저도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너무 무겁고, 위의 예쁜 지우개와 마찬가지로 잘 지워지다가 마는 단점이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커다래서 잘 안 부서진다는 것은 또 매력이었던 지우개였습니다. 나중에 여러 가지 모양의 지우개가 나왔는데 플라스틱 통 안에 작은 꽃 같은 모양이 들어있기도 했습니다. 보기에 아주 예뻤지만, 지우개는 새끼손가락 한마디나 겨우 할 정도로 작은 경우도 많았는데 어차피 커봤자 끝까지 못 쓰니 나쁘지 않고 기분도 좋았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끝까지 사용되는 지우개들이 있었는데 바로, 연필 뒤에 있는 지우개입니다. 지우개는 왜인지 가끔 사라지는 품목 중에 하나였는데 그럴 때면 연필 위의 지우개로 북북 지우곤 했다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는 쇠 부분까지 다 써서 그걸 어떻게든 손톱으로 끌어내려서 남은 지우개를 쓰려고 안달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샤프뒤의 지우개도 비슷한 길을 걷고는 했습니다. 특히 학용품을 예쁘게 쓸 생각 없는 남자 친구들이 많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연필 위에 끼워서 쓰는 지우개, 도톰한 연필 같이 생겨서 위에서 눌러서 쓰는 지우개, 뒤에 지우개 가루를 모을 수 있는 롤러와 지우개 가루를 담을 수 있는 통이 달린 지우개, 어딘가에서 놀이로 한 물에 삶으면 지우개가 되던 녀석까지 다양한 모양의 지우개를 사용했었습니다.
유치원 때, 유치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집에서 선물이 있다고 잔뜩 신이 나서 손 뒤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뭐게~'하고 물어보셨는데 잔뜩 신이 나서 뭘까? 하다가 받아보니 연한 하늘색 귀를 가진 스누피모양의 지우개였습니다. 그때는 주로 네모 지우개를 쓰다가 스누피 모양인 데다가 그림까지 얹어져 있는 지우개를 받고는 엄청나게 기뻐했던 기억도 납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부터는 잘 지워지는 지우개를 찾으려고 노력했었고, 결국 많은 아이들이 쓰는 일본 지우개로 정착하기도 했었습니다. 왜 잘 지워지는 지우개들의 모양은 다양하지 않을까요? 이건 아직도 제 궁금증 중 하나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만난 수많은 디자인의 연필과 지우개들. 공부하느라, 그림을 그리느라, 일기를 쓰느라 닳아버린 많은 필기구들. 그리고 잃어버렸던 다른 녀석들. 예쁜 필기구와 질이 좋은 녀석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난 생처음 보던 디자인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 아끼던 필기구를 빌려줬다가 많이 닳아서 속상했던 기억 등. 특별한 날이 아닌 항상 사용하던 녀석이라서 그런지 관련한 추억도 기억도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기술이 이렇게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졌는데 이제는 독특하고 예쁜 디자인의 잘 지워지는 지우개가 더 많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