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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May 31. 2022

소중한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것

2019.12.7 - 치료 17일차

 지난 4일 입원 수속을 위해 기본적인 검사, 가족 및 건강력 문진 후 주치의 침치료, 정신없는 첫날을 보내고, 오늘 벌써 병원생활 4일째다. 문득, 초등학교 2학년 때 홍역때문에 격리병동에서 지냈던 기억이 났다. 두번째 입원생활이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1인실이었는데, 이번에는 6인실. 다행히 병원밥도 맛있고, 환경이 바뀐 탓에 잠을 좀 못자서 그렇지 지낼만 하다.


 아니, 올 한 해를 이렇게 병원에서 마무리하게 될 줄이야.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거구나. 작년에 아이와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행잉트리도 못 걸어주고 왔네. 신랑보고 만들어주라 해야겠다.


 안면마비 발병이후 이상하게 잠보인 내가 집에서도 잠을 잘 못이뤘는데, 이곳 병원에 와서도 그렇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때문일까? 스테로이드 후유증으로는 부종, 혈당증가, 속쓰림 혹은 신경과민과 같은 불면증이 있다고 하는데, 아니면 오랫만에 병실생활에 몸이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나보다. 새벽에 안 깨고 푹 자고 싶다.


 이곳의 일과는 대략 이렇다.



아침 5시반 경 : 기본 바이탈 체크, 오전약 전달, 그 다음 주치의 증상관련체크.

7시 반 : 아침식사, 교수님 회진, 오전 침치료.

           그리고, 오전 오후 둘 중 아무 때나 뜸치료하러 3층

낮 12시 반 : 점심식사 후 주치의 침치료

오후 식전 : 간호사 저녁약 전달

저녁 6시 반 : 저녁식사

저녁 7시 반 : 안면운동하러 3층으로 이동 + 피내침, 얼굴테이핑

10시 : 소등, 취침


 뭔가 단순하면서도 은근히 바쁘다. 아마 어제는 신경전도, 근전도 검사와, X-ray촬영으로 더 그렇게 느꼈나보다.


 안면 신경전도 검사는 얼굴 양쪽의 이마, 눈썹, 광대, 턱 등 얼굴 주요 표정부위에 전기자극을 주는 테이프같은 걸 붙이고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귀 뒤쪽에 전기자극을 줘서 하는데, 약간씩 따끔하는 정도여서 할만하다. 발병 7일차 쯤 첫 병원에서 했던 검사와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하나를 더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안면 근전도(ENoG) 검사. 그 테이프 붙이는 부위의 근육에 전기가 통하는 바늘을 찔렀다. 표정을 최대한 쎄게 오래 지으라고 했다.

 얼굴에 바늘을 찌르니 아프기도 했지만, 그 상태로 몇 초간 얼굴에 힘을 주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 얼굴을 있는데로 쥐어 짜는데도 더 힘을 주라고 하니까. 문득 출산 할 때 간호사가 "산모님 조금만 힘내세요. 더더~~"했던 순간과 오버랩되었다. 손에 식은땀이 났다. 검사 받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검사 결과는 회진 때 알려주시겠지. 신경 손상이 많이 되었으면 어쩌지하는 마음에 불안해졌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그래도 오늘까지의 호전반응을 찾자면,


 아직 오른쪽 이마는 꿈쩍도 안하고, 오른쪽 콧망울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있다. 물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나만 느끼는 감각이다. 그제 저녁부터 오른쪽 광대쪽에 힘들어가는 느낌과 어제 저녁부터 '스마일~~'할 때 오른쪽 볼에 미세하게 힘이 느껴지는정도. 

 그렇지만 아직 혀 반쪽이 코팅된 듯한 느낌은 남아있고, 귀 통증은 어제부터 거의 없지만 만지면 멍하다. 또 마비 2주차 넘어가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밥 먹을 때 턱근육이 아파서 씹는게 중노동처럼 느껴졌다. 씹는 게 힘들어서 쉬었다 먹을 정도였다. 안면신경이 절단되었다 하더라도 턱근육을 움직이는 건 다른 신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턱은 움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씹는게 왜 이렇게 힘든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거울을 보고 조금씩 움직여보거나 잠도 잔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몸의 회복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아이와 이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싶었다. 회복을 위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이 불안한 마음부터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챙겨온 것 중에 하나는 책이다. 그동안 보려고 했는데 여차저차 보지 못했던 책 몇 권들. 비록 책을 오래 보기에는 오른쪽 눈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읽었다. 

 어제 처음 읽은 책은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이슬아 외 7명/문학동네)였다. 반려견, 반려묘에 대한 존중,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담아낸 책이었다.


 나에게도 반려견에 대한 아프고 미안한 기억이 있다. 그 이름은 깜비. 예쁘고 장난기 가득한 슈나우져였는데, 벌써 약 10년도 더 됐네.. 늘 깜비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왜냐하면 6개월정도 지내다 엄마가 다시 분양해주신 아빠 친구집에 보냈기 때문이다. 아저씨 와이프가 애견 분양업을 하고 계셨는데, 가족간의 충분한 합의 없이, 견종에 대한 이해없이, 데려오는 바람에 가족으로 오래 함께하지 못했으니까. 

 특히 김금희 작가의 장군이 이야기 한 소절에서 왜인지 눈물이 왈칵 했다. 



 아마 장군이가 지금까지, 오래오래 살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을 훨씬 더 염세적으로 보게 되었을 것이다. 불운이란 얼마나 갑자기 찾아드는지, 얼마나 일상이 그것에 우울하게 잠식되는지, 삶을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개는 그러지 않았다. ...어느날부터인가 조금씩 자신의 패턴을 만들어갔다.....(중략)

나를 봐, 갑자기 떠나지 않지, 어디 한 부분을 잃었다고 모두를 다 저버리지 않지, 당당하지.....(중략)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완전히 지지 않고 나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p.82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 김금희)


 아픈 장군이가 어느날 부터 자기에게 닥친 불운을 이해하고, 당당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그 작은 생명의 강인함을 느꼈고, 오히려 그런 장군이를 통해 세상을 새로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불운이 아니었을 수도, 혹은 이 정도가지고 불운이라 여기냐 할 지라도, 나는 지금 이 병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고, 우울감을 느낀다. 분명 기쁘고 웃고 싶은데 얼굴을 보면 웃는 거 같지 않아 보이는 게 이렇게 슬픈일 일 줄 정말 몰랐다. 웃고 있는데 슬프다니. 그게 내 아이에게까지 전해질까봐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소중한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일은 이렇게 불운을 겪거나 혹은 좌절과 같은 힘든 일 뒤에 온다. 겪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절대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너무 잘 하려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잘 보이려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걸. 정말 소중한 것들이 뭔지 알고 곁에 두고, 한번씩 꺼내보고 보듬어 줄 걸.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 불운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조금씩 나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쌓고, 나만의 패턴으로 극복하며 다시 제자리에 있지 않을까. 더이상 불운이라고 느끼지 않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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