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비로소 지난 6월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거실 책상으로. 물론 그 시간부터 책상에 주욱 앉아있을 수는 없다. 식구들이 보통 일어나는 시간인 오전6시반~7시부터는 식구들 아침을 차려주고는, 아이 등원시키고, 집 정리 좀 하고 나면 진짜, 책상에 앉는 시간은 10시다.
출산과 육아로 나의 명함은 전업주부, 고정수입은 없었다. 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는 "샘 다시 일 해요?" 혹은 "일할 생각없어?"(하긴, 최근 몇 년은 이제 물어오는 지인들도 없었다)라고 물었을 때 왜인지, 무엇 때문인지 떳떳하지 못했다. 블로거, 각종 서포터즈와 공기관 기자단, 환경모임리더,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가 등 내가 전업주부가 아닌 다른 타이틀로 하는 일은 엄밀히 따지면 거의 취미에 가까웠다. 여러 일들을 찾아가며 나름대로 즐기며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JOB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무엇보다 고정적인 수익화를 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냥 그 자체가 좋은 일이고 이 일로 돈도 벌 수 있으면 좋지. 딱 그거였다.
늘 지인들에게 아이 크면 일을 할 거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유는, 이제껏 내가 여지껏 끼고 있던 아이를 하원 후 남이 손에 맡기는 게 싫었다. 싫다기 보다는 불안하다 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둘째는 그 사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졌으며, 그 좁아진 취업시장을 뚫고 받은 월급은 겨우 내 자존심만 세울 정도 라는 것도 안다. 그 얼마 안되는 월급을 쪼개 도우미선생님께 드려가며 원치 않는 JOB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신랑이 벌어오는 돈이 있으니 배부른 소리를 한다라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말도 맞다. 그런 이유로 어떤면에서 주부의 재취업이 쉬울 수도 있고, 나처럼 저런 이유로 어려울 수도 있다. 셋째는, 이런 이유로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하며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돌아와 아이하원을 챙기는 꿈의직장(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이것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에 재취업하기란 내가 지금 대기업에 취업할 확률과 비등하다는 것도 알았다. 마지막은, 전업주부로의 생활도 사실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언젠가부터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신랑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살림을 하고, 그리 넉넉지는 않아도 그리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워낙에 혼자 집에 있는 것도 좋아하고, 주부의 가장 큰 장점이 시간을 잘만 쓰면 정말 부지런해질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살림도 하면서, 육아하며 그야말로 일과 취미의 경계가 없는 삶을 주부가 되면 누릴 수 있다. 물론 집안일은 끝도 없고, 알아 주는 이도 없고, 월급도 없고, 승진도 없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긴 하지만....
작년 4월 환경교육사 자격을 따고 작년과 올해 인턴으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돈보다도 경험을 쌓고 싶었고, 정말 내가 강사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울었다. 하도 메말라서 안구 건조증을 달고 사는 내가 그때 울었다. 다 되었다 싶었는데 한순간에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눈물이 났었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육아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과, 또 하나는 내가 참 욕심이 많구나 라는 거였다. 둘 다 잘 하고 싶은 욕심. 조금은 유연해질 필요도 있는데 그게 용납이 안되는 나란 인간.
암튼 그 때 이후로 내가 환경블로거로 있으면서 여러가지 벌인 일들에 회의가 들었었다. 이 쪽 분야에 몸을 담는 것도 쉽지가 않구나,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을 유지하며 어딘가로 출퇴근을 하는 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꽤 몇 년간 새벽에 일어나(역시 매일은 아니다) 노트북을 켜고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그저 그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아 일부러 새벽출근을 자청했었지만, 요즘은 노트북 대신 모니터 두대를 켜고 CS를 확인하고 물건들의 재고 상태를 파악한다. 그렇다. 최근 두 달간 나의 아침루틴이 또 바뀌었다. 지금 나는 요즘 매우 핫한, 온라인 셀러가 되었다. 몇 달을 고민해왔다. 무엇보다도 환경공부를 하면서 책을 보면서 물건을 파는 것과 소비하는 것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내 안에서 이걸 용납하기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온라인 마켓에서 돈을 어떻게 버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위에 4가지 이유를 다 포기 하지 않고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메리트를 느꼈다. 지금도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짓인가를 매일 고민한다. 나도 모르게 마켓에 올릴 뻔한 몇백가지의 포장용기와 일회용품들을 삭제하면서 가슴을 쓸어내기도 하고, 이 세상에는 참 팔아먹을 것들이 많구나 라고 놀라며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로 보는 세상은 또 다르다는 것에 두번 놀란다.
예전에 사회복지사, 사례관리사로 근무하면서 만났던 클라이언트들에게 정신적인 피로감을 매일 느껴왔었는데 이 일은 공급사와 고객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 당하다 보면 정신이 쏙 빠지고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해짐을 또 매일 느낀다. 그러다가도 젠틀한 고객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참.
무엇이든, 누군가가 나를 찾는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것같다. 매일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건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 같다. 생각보다 이 일을 하고나서 뭔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나는 역시 멀티테스크 인간은 아니다. 나에게도 JOB이 있다는 것, 또렷하게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는 일을 가졌다는 게 이토록 안정감을 주는 일일 줄은 몰랐다.
아직은 버는 거보다 들어가는 게 더 많은 초보 사업가라 그럴듯하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긴 어렵지만, 언젠가는 내가 팔고 싶은 걸 자신있게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바래보기도 한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소비를 이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아침 모니터 두 대 앞에서 어퍼컷을 당하느라 정신이 없고, 아이가 하원하고도 모니터에 앉아 있는 날이 부지기수지만, 이 또한 하다보면 나에게 맞는 방향을 찾을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나는 거실로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