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텃밭에서 살려온 우리 집 딸기는 여태껏 꽃을 안 피웠다. 딸기는 언제 먹어보나....
처음, 건조기라는 신문물을 만났을 때 무선진공청소기가 나왔을 때처럼 고민 없이 샀었다. 유선 청소기가 싫었던 나는 무선청소기의 첫 등장에 80여만 원의 거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샀었다. 건조기 역시 빨래 개는 것보다, 너는 게 더 귀찮은 나에게 꼭 필요한 살림템이라면서 첫 주자로 샀었다. 나의 살림력을 한껏 상승시켜 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살림 일타 조력자인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면 바로 옆 안타선수, 건조기한테 바로 토스했다. 좌우로 돌아가는 통돌이에서 나온 빨래들은 이번에는 위아래로 돌아가는 통돌이 속에서 이리 섞이고 저리 섞여가며 다시 한번 정신이 쏙 빠질 차례였다. 그렇게 1시간 반을 골고루 쳐댄 빨래들은 뽀송하다 못해 뜨뜻하게 말라야 비로소 밖을 나온다. 이 세상엔 빳빳한 수건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먼지 쏙 빠진 부들부들한 수건이 바로 건조기의 작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한여름에 건조기를 돌리는 게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밖은 뜨겁다 못해 타 죽을 거 같은데, 나의 잠깐의 편함을 위해 매일 돌리다시피 하는 3인 가족의 빨래들을 1시간 30여분이나 전기를 돌려가며 말리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건가?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굳이?!
그 이후부터 여름엔 건조기 대신 다시 낡은 빨래건조대와 옷걸이들에게 다시 할 일을 준다. 그리고 빨래가 좀 많은 날에는 얼마 전 부러져 다시 산 보조 빨랫대를 꺼내 펼친다.
남서향의 20층 아파트 베란다의 낮은 뜨겁다.
뙤약볕아래 우리 집 빨래는 맛있게 익어간다.
건조기는 이미 사버렸으니 끝까지 잘 쓸 거다. 그렇지만 이렇게 볕이 좋은 날에는 시간과 몸을 조금 더 써서 자연의 손길에 맡기기로 한다. 그렇게 말린 옷과 수건에 살균과 얼룩제거 효과는 덤이고, 공짜다.
그렇게 모든 습기를 다 빨아간 태양 덕분에 어제 우리 집 수건들은 오랜만에 바삭해졌다. 아마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건조기 통보다는 이게 더 마음에 드는가 보다. 개운한가 보다.
내친김에 습기제거제도 내놓는다. 통 안에는 습기와 냄새를 가져가는 원석이라고 해서 샀는데, 효과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쯤에서 스쳐가는 제습기의 유혹은 다시 흘려보낸다. 잠시 습해도, 한 뼘의 빈 공간을 확보하는 게 더 좋으니까.
올해 텃밭은 못해도 작은 텃밭을 베란다에 두었는데, 상추, 루꼴라는 다 싹을 못 틔웠고 역시나 케일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작년 몇 개 주워왔던 도토리 하나에서 뒤늦게 싹이 나 얼굴을 빼꼼 내민 미니 상수리. 홀로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니 저 도토리는 분명 강한 친구일 거다. 이번에는 꼭 더 잘 키워서 내년 식목일, 아파트 뒷산에 나무를 심어야지.
그리고 이번에는 새벽배송에 함께 온 물 보냉팩을 가위로 자른다. 베란다 벽 한편에 대책 없이 자라고 있는 풍선초에 물을 부어주었다. 요즘 물로 채운 보냉팩이 꽤 많아졌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 모아두었다가 이렇게 화초에 물주기용으로 쓰면 그렇게도 재활용이 된다.
그렇지만 나의 정성에도 풍선초의 완성된 풍선을 보기란 쉽지 않다. 물을 자주 준다고 하는데도 이 녀석은 물을 정말 좋아하는지 꽃이 지고 매달린 작은 풍선들은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말라서 떨어져 버린다.
다행히 요 한놈은 꽤 영글었다. 하트 무늬가 있는 풍선초의 씨앗은 저 안에 들었다.
작년 한 식당에서 우연히 얻은 풍선초 씨앗이 이렇게 자라서 다시 풍선을 만들어주니 정말 신기하다. 좀 더 많이 열리면 아이학교 친구들에게 설명도 해주고 나눠가지라고도 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신기해할 거 같은데..
풍선초 키우기, 내 맘 같지 않다.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벽 한편에 덩굴로 잘 키워서 여름조경용으로도 좋을 거 같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좀 안 맞는 거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어제, 해가 반짝하여 베란다에 좀 머물러 있었다.
좀 더웠지만 덕분에 축축해 있던 기분도 우리 집 빨래와 함께 보송하게 말랐다.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