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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Nov 18. 2022

느슨한 축소주의자의 제로웨이스트 생활





 신속과 간편함이 고개만 돌리면, 폰만 켜면 결제버튼 하나에 모든 게 척척 해결되는 걸 모를리 없지만, 요즘은 뭔가 그런 순간들이 버겁다고 느껴진다. 쉴 새없는 광고와 정보들 그런 장면장면들이 너무나 유혹적이고 자극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결제버튼은 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편리함을 편히 아무생각 안하고 누리면 될 일인데, 그러지를 못할 때가 많아졌다. 그렇다고 이미 편리함의 노예가 된 지 오래인 탓에 아예 모르쇠 할 수는 없지만, 이 둘 사이를 적절히 곡예질하며 산다.

 그렇다 해도 사고 싶음의 욕망과 없어도 아무일 없음의 절제 버튼 사이를 오가다보면 가끔은 무기력해진다.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선택의 결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무언가를 하는 게 하지 않는 것 보다 차라리 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세상은 자꾸만 더 사라고 하고, 뭘 하라고 하고, 더 나아가라고 하니까.




 그런 나에게 욕망과 절제 사이에 또다른 버튼이 있지 않을까 찾아본다.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누추하지도 않음을 위한 나만의 버튼 사용법을 하나하나 들춰본다. 





이런 노력의 순간들을 모으고 기억한다. 작은 습관들이 만들어내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느슨한이라는 수식어를 제로웨이스트앞에 붙여쓰기 시작한 이유는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허들이 너무 높고 강력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바꿔가야 할 허들부터가 너무 높다. 그래서 문턱이 낮은,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생활이라는 말을 대체할 말을 찾고 싶은데 당췌 그 말이 뭘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 제로웨이스트는 상징적인 말일 뿐이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제로웨이스트가 대변하려는 것은 단순히 쓰레기 제로생활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말이 나에게 준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예전보다는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고 삶의 방향을 정할 때 조금은 나의 주관을 더 진하게 단단해질 수 있게 만들었다는 거다.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꽤 신중히 고르려고 하고, 옷도 자주 안 사니 살 때 좋은 옷을 오래입기로 한다. 딱 보고 바로 쓰레기행 할 듯한 장난감들은 사주지 않는다. 사도 되도록 중고로 사준다. 휩쓸리듯, 누가 사니 나도 사야지. 보다 꼭 필요한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쟁여두지 않고 조금씩 자주 산다. 물론 칫솔과 치약과 같은 생필품들은 일부러 몰아서 사두기도 한다.

 


 

 


 채식이 가장 큰 탄소중립으로 가는 방법이라지만 주방에서만큼은 자주 게을러지는 나에게 손이 많이 가는 채식(그렇지 않고는 서양식 채식메뉴는 뭔가 어렵고, MSG맛 가득한 콩고기는 싫다)은 큰 숙제라 고기사는 횟수를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대신 우유는 안 산지 오래되었고, 요거트와 치즈는 가끔 산다.



 

 최근에는 동네 제로웨이스트샵에서 주방세제와 세탁세제는 리필해 쓴다. 성분도 좋고 생산과정도 정말 좋다. 샴푸는 샴푸바로 정착하고, 손세정제와 바디샴푸 대신 이 둘을 비누가 다 해결해 주고 있다.

 이런 습관들이 우리집 쓰레기의 절대값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쓰레기는 식재료같은 음식물쓰레기와 기타 포장 쓰레기가 70프로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손수건을 내미는 나에게, 비닐을 거부한 나에게 '아 환경을 생각하시는 분' 하며 빈정거렸다. 나의 행동들의 무엇이 그들을 불편하게 한 걸까? 그 이면에는 절대적인 힘에 대한 무력감이 녹아있다. '그까짓 행동 하나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렴.'


 하지만 이런 패배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지금의 풍요를 가져다 준 것들을 앞으로도 믿고 지키며 더 얻으려 노력하겠지. 



 다만, 그런 나에게 꼭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만 하는 거 아니냐는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 완벽한 제로웨이스터보다 나처럼 느슨한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풍요들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왜 지구가 아니라 우리냐고??



 '지구는 우리가 사라져도 아주 잘 지낼거다. 우리가 문제지.' 라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고, 숨고 싶었다. 어쩌면 인간은 위선으로 뭉친 존재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지구가 내내 외쳤을거다. 착각도 유분수지라고...그런 위선과 잘남이 지구의 역사를 단시간만에 바꿔놓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전히 매주 재활용쓰레기를 한가득 버리며, 차도 몰고, 택배도 잘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각자의 생활안에서 만들어가는 다양하고 느슨한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지지한다. 그리고 욕망과 절제의 버튼 사이를 곡예하며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멈춤'버튼 한번씩 누르는 그 작은 행동을 모아 루틴을 만드려는 사람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어렵게 만들어 낸 루틴이 그래도 어딘가에는 영향을 미치리라는 순진함을 마주하는 순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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