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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Nov 05. 2021

몸보다 마음이 편한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내 가방 속 소지품들에 대하여...

 얼마 전 같은 동네 살다가 이사 간 동생이 주고 간 이별의 선물, 손수건. 보들보들, 유들유들한 거즈면에 포근한 느낌이 드는 손수건을 그냥 손수건으로 쓰다가, 이렇게 써보기로 했다.

크기가 제법 커서 이렇게 과일 도시락에 손수건을 보자기 삼아 싸서 포장하니, 들기도 좋고, 예쁘기도 하고, 간편하다.

전에는 손수건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가방 속 소지품 영역에서 손수건은 늘 그 경계에 있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필요성을 못 느끼는 그런 물건. 등산을 가지 않고서야, 휴지나 일회용 물티슈는 주변 어딘가에 있었고, 없으면 같이 있는 사람들이 선뜻 빌려줄 때도 많았으니, 외출할 때 또 하나 챙겨야 할 '거리'에 불과했던 손수건은 그렇게 지갑, 핸드폰, 장바구니와 함께 내 가방 속 소지품 영역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손수건은 부피도 작고, 바람에 날릴 만큼 가벼우며, 취향을 은근히 표현할 수 있는 액세서리로도 활용이 가능하니 소지하는 것에 부담이 적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잘 잃어버릴 수 있는 물건 중 하나라는 점. 잃어버릴 것을 미리 염려하여는 아니지만, 다른 물건들은 딱 필요한 만큼 소유하라고 하더라도, 손수건에게는 조금 더 여유를 베풀어도 괜찮다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간식의 유혹은 늘 달콤하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유혹을 이겨낼 때가 있다. 포장해 갈 통이 없으니 그냥 지나치는 기적 같은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내가 참 신기하다. 그러다 어쩌다 이렇게 통을 챙겨가 포장해오는 날은, 정말 뿌듯함이 심장을 뚫고 나올 지경이다(용기 내 성공의 참맛이랄까). 그런 날은 마음에 여유가 차고 넘친 날이다. 더욱이 저 순대와 아이스크림을 포장해 온 날, 담아주시는 직원들의 반응들이 1년 전과는 사뭇 달랐기에, 이제 다회용기에 포장해 오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 된 것만 같아 더 기분이 좋았다.


 지난번 읽은 #에코에쎄이 에서 어느 작가분이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일회용기를 많이 쓰는 건 그만큼 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도 매주 재활용 쓰레기 통을 바라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 이번 주는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었구나.', '이번 주는 내가 그래도 좀 애썼구나.'라고. 결국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가끔, 그렇게 하는 게 돈이 많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시장의 규모가 작은 '유기농', '친환경'의 옷을 입고 나온 제품들은 약간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2년 가까이 관심을 가지고 실생활에 적용해보니, 생활비가 더 들지도 않았고, 덜 들지도 않았다. 그 이유를 분석해보니, 겉치장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여나가기도 했고, 무심코 들여다봤던 인터넷 쇼핑 횟수가 줄었고, 대형마트의 출입도 현저히 줄였기 때문인 것 같다. 소비지향적인 생활에서 가치지향적인 생활을 추구하게 되니 생긴 변화이다. 그건 확실하다.

점점 나에게 중요한 것들로 주변을 채우고 그것들과 최대한 오래 지내야겠다는 그 생각은 선명해진다.

정말로 그 선명함에 나의 삶이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반성하고 또 나아가려 한다.



 일주일에 1~2번은 육류나 어패류를 산다. 마찬가지로 여력이 되는 날에는 이렇게 실리콘 백이나 통을 들고 가 동네 정육점이나 아파트 장 서는날 오시는 생선가게에서 포장해 오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마트에서 사 온다. 아이와 신랑이 있기 때문에 육류를 끈는 것은 채소만으로 식단을 짜는 것에 나의 요리실력이 거기까지는 못 미치기에 여전히 쉽지 않지만, 횟수를 줄이는 것은 가능해졌다.

 멸종저항 영양학,  이의철, p. 114


비건 관련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고기를 볼 때마다 불쑥불쑥 책에서 읽었던 문장들이 떠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레 아무런 의심 없이 이어 온 40년간의 잡식으로 다져진 머릿속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에는 예쁘게 포장된 정육코너 앞에서 먹거리가 아닌 살아있던 소와 돼지가 생각나 그냥 지나치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생각을 하면서도 반찬거리가 없으니 짚어오기도 했고, 아무 생각 없이 짚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고기가 아무 맛이 안 날 때도 있었고, 어느 날엔 너무 맛있기도 했다.

자연식물식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고기를 굽고, 요리하고, 씹고 있는 내가 참 이중적이라는 걸 느끼며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은 그게 나'라는 걸 마주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불편'이라는 것도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고, 안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몸이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나의 신념을 크게 달리하는 일이 아니라면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기로 했다. 몸이 불편한 건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두고두고 남기 때문이다.




몸보다 마음이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나는 그 괜찮아진 마음을 먹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런 변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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