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칼끝이 사과의 매끄러운 표면에 천천히 닿았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얇은 껍질을 뚫고 들어가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껍질이 갈라졌다. 칼날이 서서히 속살을 가르며 과육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으로 갈라보니, 껍질 아래 멍이 든 자국이 보였다. 겉은 말끔해 보였지만, 그 속은 이미 상처를 품고 있었다.
문득 어제 사과를 냉장고에 넣으려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별일 아니겠지 하며 얼른 집어넣었던 순간. 그렇게 부서진 속이 어느새 흔적이 되어 남았던 걸까.
사과를 자르던 칼이 손에서 멈췄다. 깊숙이 박힌 멍 자국을 보니, 가슴속에 오래 묵혀둔 감정이 저릿하게 차오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속에서부터 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은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다. 멍든 사과 조각을 마주한 채, 그 작은 상처가 내 안의 아픔과 마주하는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 절규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