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블로프 Nov 09. 2020

싸가지없는 99

요즘 99년생들은 왜 그렇게 버릇이 없을까.

 재작년 1월 즈음이었다. 기말 시험을 치르러 가던 중 나는 몇몇 한국인 선배들이 뒷담화를 하는 것을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요즘 99년생들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그 뒤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한참을 벽에다 대고 횡설수설 거렸다. 어떻게 하면 저 선배들의 콧대를 눌러줄 수 있을까? 많은 생각 끝에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그 주 토요일에 동네 이자카야에서 열린 이른바 '한인 유학생 교류회'에서, 나는 그 결론을 행동에 옮겼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몇몇 선배들이 내게 술을 권유해왔다. 처음에는 못 마신다는 말로 거절했으나, 두세 번이 되자 하는 수 없이 몇 잔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확히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 나는 홧김에 취한 체를 하고서 앉고 있던 의자를 허공에 휘둘렀다. 아직도 그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비록 2잔이었지만 2~30도의 독한 청주를 마신 탓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 '선배'들의 눈초리가 눈깔 요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요괴들은 나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불교신자라서 그런 줄 알고 속으로 '옴 마니 반 메훔'을 세 번 외웠다. 물론 그 자리에선 내가 가장 요괴 같았을 테지만 말이다. 


 

 정조대왕이 아직 이산이라는 이름의 세손이었을 시절, 그의 조부이자 조선 21대 국왕인 영조는 손자에게 한 가지 엄명을 내렸다. 바로 부모의 사랑을 다룬 경서를 읽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호기심을 못 이긴 소년은 결국 그 책을 읽게 되었고, 이 한 문장에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불행한 소년에 공감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싸가지없는 99'는 그 문장을 이런 식으로 고쳐 적을 것이다.


'아버지는 망하고, 어머니는 그 와중에 나를 낳으셨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아버지는 아가방이라는 사진관에서 일하셨다. 어머니는 한때 잘 나가던 잡지의 편집장이었고, 아마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진 일을 계속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IMF사태가 터지고 나자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출되셨고. 결국 '출근한다고 오락실에 가는'아빠 대열에 합류했다. 엄마는 그 와중에 나를 낳으셨고, 돈

이 없다고 칭얼대는 대통령의 구걸에 못 이겨 결혼 예물인 금가락지를 내놓았다. 








 99년생은 90년대의 뒷문을 닫고 오는 이른바 '세기말 인간'이다. 그들은 102년만 살면 3세기를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대나무 헬리콥터를 타고 출근하는 '신세대'들에게 군사독재가 얼마나 억압적이었으며 소련 붕괴는 얼마나 자신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99년생이 싸가지가 없는 이유다. 이들은 20세기를 1년도 다 못 산 주제에 거만하게 전세기를 논하는 것이다. 정말 한숨만 나오고, 큰일이다 싶다. 


 이전의 1998년생과 이후의 2000년 대생들과 구분되는 점은 이들이 꿈도 희망도 없는 세기말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지난 세대가 쌓아온 쓰레기를,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그것을 다 치워야 한다는 억척스러움만 받은 채 자라났다. 이들은 여덟 살 되는 해에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는 소고기에 저항해야 했고, 작금의 코로나 사태보다 100배는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은 전염병 유행에 희생되어야 했으며, 자기 바로 윗선배들이 떼거지로 바닷물에 익사하는 것을 현장학습 날에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봐야 했다. 이들은 또한 자기에게 온갖 권위와 원칙을 내세우던 집단이 다름 아닌 쥐와 닭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을 보았고, 자기들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시험 날 대지가 흔들리고 사회가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동시에 이들은 앞선 세대와, 이후의 세대들에게 끊임없는 질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전 세기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했던 것을 들고 와서 그것을 일종의 훈장처럼 자랑하고 다녔다. 가령 자신들의 세대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던 것을, 아날로그 감성을 모른다며 훈계질 하는 것이다. 이들은 99년생을 두고,


-이전 세대가 이루어온 성과(민주주의, 경제성장)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르고 배부른 소리만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도서관에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인터넷에 쉽사리 검색할 생각만 한다.

-이들은 배은망덕한 개새끼다.


 또한 자기 세대가 지나치게 지루하고 따분했던 것에 대해선 이렇게 얼버무린다.


-나가서 뛰어노는 것의 참된 재미를 모른다.

-방 안에서 게임이나 한다. 자기 계발은 뒷전이다.

-자극적인 시청각매체에 과하게 중독되어있다. 독서와 같이 오랜 자기 성찰을 통해 깊은 의미를 얻어내는 것에 뒷걸음친다. 그걸 할 의지조차 없다.


등등.


 또한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받는다.


-기계도 제대로 못 다루는 것들이 신세대 인척 하는 게 꼴불견이다.

-자기네들이 고생한 것(촛불 시위) 때문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개소리를 한다.

-지들이 온갖 악습(교복, 일진, 찐따)을 물려줘 놓고는 우리 세대의 타락을 운운한다.




 


 99년생에게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중립적인 위치에 서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지막 20세기 인간으로, 구세대와 신세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때 빛난다. 동시에 두 세대에 걸친 이들의 인생은 그 이전과 그 이후에서 당연하게 여겨졌고, 또한 당연하게 여겨질 생각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99년생이야말로 지난 세대의 억압이 닭의 홰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동시에 99년생은 이후의 세대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술(카카오톡, 유튜브 등)과 함께 자라났다. 그들과 같이 걸음마를 떼고 같이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같이 사회에 나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가장 혐오받는 존재임과 동시에 남들을 가장 잘 조롱할 수 있는 세대이다.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세대이기에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도발적인 세대이다. 


 99년생은 싸가지가 없고, 00년생은 우월의식에 차있으며, 01년생은 머리에 든 것이 없다는 것이 그 '선배'들의 평가이다. 그러나 싸가지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버릇이 없다는 뜻도 되겠지만, 동시에 자신을 찍어 누르려는 윗사람의 엄지손가락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물어버린다는 뜻도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글을 읽는 구세대와, 신세대와, 나와 같은 99년생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세대는 무엇이냐고, 그리고 서로 간의 대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느냐고.



 

 


 



작가의 이전글 영문학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