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싸마디 빠다 (Samadhi pada)
지도자 과정이 시작되고, 몇 년 동안 사지 않았던 책을 샀다. 한국에 와서 갖고 있던 책을 전부 다 팔고 이제 이북의 삶을 살겠다 다짐했는데, 여전히 이북은 불편해서 결국 필요 서적을 책으로 샀다. 나의 구루는 첫 수업에 <빠딴잘리의 요가수뜨라>를 가져오고, 1장을 읽어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활자를 읽으려니 책장을 넘기는 손이 다 어색할 지경이었다. 어딘가 쉽게 읽히지 않을 것 같은 표지이긴 했지만 정말 쉽게 읽히지 않았다. 뜻을 이해한다기보다는 활자를 읽어 내려갔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요가의 역사나 철학에 대해 쉽게 풀이한 책인 줄 알았건만, <빠딴잘리의 요가수뜨라>는 요가경이었다. 요가경이니까 말씀이 어려울 수밖에. 사실 대부분의 철학서적, 종교서적이 그러하듯, 이 책도 다 읽고 보면 세상 사는 말을 하고 있다. 다만 그 말을 낯선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을 뿐. 사실 이 책을 읽은 지 1년 반이 넘었기에 책의 내용이 완전히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브런치를 통해 다시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책에 대한 정리를 해볼까 한다. 하나하나 파고들 자신은 없으니, 전체 구절은 올리되, 읽으면서 특히나 와 닿았던 몇 구절에 대해서만 풀이하듯 기록해보겠다.
제1장 싸마디 빠다 (Samadhi pada)
아니, 책을 펴자마자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싸마디 빠다라는 낯선 언어가 나를 반긴다. (사실 싸마디 빠다 이전에 서문과 서론이 있긴 하다.) 대충 서론에서 보니 싸마디 빠다는 삼매의 장이라는 뜻인데, 요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론 설명을 하는 장이라고 했다. 음, 그래 이론 중요하지. 그래서 그런가 싸마디 빠다의 첫 번째 구절은 '이제 요가의 가르침이 시작된다'이다. 첫 구절이 의외로 직관적이라서 생각보다 쉽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판단을 잠시 했다. 친절하게 싼스크리트어까지 해석해서 설명도 달아주는 데다가 오랜만에 글자를 읽으니 지적 허영심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래는 51개의 구절 중 1에서 10까지의 내용이다.
1. 이제 요가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2. 마음-재질 작용의 제어가 요가이다.
3. 그때 보는 자[참자아]는 그(참자아) 자신의 본성에 머무른다.
4. 다른 때에는 [참자아가 나타나지 않을 때에] 마음의 작용들의 형태를 따른다.
5. 마음 작용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고통스럽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다.
6. 다섯 가지 마음 작용은 올바른 지식, 잘못된 개념, 언어에 의한 착각, 수면과 기억이다.
7. 올바른 지식의 근원은 직접 인식, 추론 그리고 경전의 가르침이다.
8. 잘못된 개념은 어떤 지식이 참다운 형태에 근거하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9. 어떠한 실체도 없이[그것의 근거로서] 단지 말을 듣는 것만으로 떠오르는 상상을 언어에 의한 망상이라고 한다.
10. 아무런 의식이 일어나지 않는 정신 작용이 수면이다.
전문용어처럼 보이는 싼스크리트어를 제외하면 사실 그다지 어려울 게 없는 내용이지만, 실천하고, 수행하기에는 뜬구름 잡는 소리들처럼 느껴진다. 책은 각 구절마다의 해석과 풀이가 함께한다. 9까지는 어느 정도 쉽게 이해를 하겠는데, 10부터는 혼란에 빠진다. 아래는 11부터 20까지의 내용이다.
11. 전에 경험했던 대상에 대한 마음 작용이 잊혀지지 않고 의식으로 돌아왔을 때, 이것이 기억이다.
12. 이러한 마음 작용들은 수행과 무집착에 의해서 제어된다.
13. 이러한 두 가지 가운데서, 마음의 확고함을 위한 노력이 수행이다.
14. 수행은 오랜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열성을 다해 잘 견뎌 냈을 때 확고하게 수립된다.
15. 보았거나 들었거나 대상들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갖고 있는 자기-통솔 의식이 무집착이다.
16. 뿌루샤(참자아)에 대한 깨달음 때문에, 심지어 (자연의 구성 요소인) 구나에 대한 목마름조차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그것을 최상의 무집착이라고 한다.
17. 유상 삼매(분별 있는 명상)는 거친 생각, 미세한 생각, 환희 그리고 순수한 개별감(ego)에 관련해서 일어난다.
18. 마음 작용의 완전한 멈춤의 수행이 확고하게 확신됨으로써 단지 잠재 인상만이 남는다. 이것이 또 다른 삼매[무상 삼매 혹은 분별하지 않는]이다.
19. 단지 그들의 육신을 떠나 거룩한 신성 상태에 도달한 사람들, 혹은 근본 원질에 결합된 사람들도 다시 태어나게 된다.
20. 다른 사람들에게 이 무상 삼매는 믿음 · 힘 · 기억 · 삼매 혹은 분별지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
10부터 혼란에 빠지는 이유다. 10부터 본격적인 의식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 책이 말하는 의식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12에서 얘기하는 마음 작용들이 수행과 무집착에 의해서 제어된다는 것에 많은 감정이 오갔는데, 그건 15의 풀이에 나와 있는 '해탈을 위한 욕망도 속박이다. (Mokshadheksho bandhaha)'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수행과 무집착으로 마음을 제어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의 자기-통솔 의식이 무집착이라는 건데, 저 책을 막 읽을 당시의 나는 요가를 더 '잘'하고 싶어서, 그리고 요가를 통해 답과 지혜를 찾고 싶어서 집착을 일삼을 때였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나의 욕망들이 집착이고, 삶으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하는 자세 또한 집착이었으니, 그 욕망이 속박이고, 진정한 무집착과는 매우 거리가 먼 상황이니 감정적으로 동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수련만이 요가에 닿는 길인데, 그 끊임없는 수련을 붙드는 것도 욕망이고, 그렇다면 그 욕망을 버리고 수련을 멈추는 것도 요가인 것 아닌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사고가 깊어졌다. 아, 이 사고하는 것에 대한 모든 것도 요가의 길이 아닐까!
다음은 21부터 40까지의 구절이다.
21. 예민하고 강렬한 수행자들에게 이[삼매]는 매우 빨리 온다.
22. 더 이상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시간은 수행이 약한지, 중간인지 강한지에 달려 있다.
23. 혹은 신[이스와라]에게 온 마음으로 귀의하는 헌신에 의해[삼매에 도달한다].
24. 이스와라는 최상의 뿌루샤이며, 어떠한 고통들, 행위들, 행위의 결실들 혹은 어떠한 내적인 욕망들의 잠재력에 의해서도 영향받지 않는다.
25. 그는 일체의 지혜를 아는 씨앗의 완전한 발현이다.
26. 시간에 의해 제한받지 않으므로, 그(자재 신)는 가장 태고의 스승들에게도 스승이다.
27. 이스와라를 나타내는 말은 신비한 소리 OM이다[옴은 신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이름이다].
28. 그것의 의미에 대해 명상하면서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29. 이 수행으로부터 모든 장애물들이 사라지고 동시에 내적인 참자아에 대한 지혜가 점점 분명해진다.
30. 질병 · 무기력 · 의심 · 무관심 · 게으름 · 애착 · 잘못된 견해 · 확고한 경지에 이르는 데 실패함, 그리고 얻은 토대로부터 미끄러져 내림 ── 이러한 마음(재질)의 혼란이 장애들이다.
31. 정신적인 산란함에 수반되는 것은 고통, 절망, 육신의 떨림, 그리고 불안정한 호흡이 포함된다.
32. 한 가지 주제[혹은 한 가지 기술의 사용]에 대한 명상 수행은 장애물과 거기에 수반되는 것들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33. (남의) 행복을 향해서는 우정을, 불행을 위해서는 자비를, 덕스러움에 대해서는 기쁨을, 사악함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배양함으로써 마음-재질은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한다.
34. 그 고요함은 조절된 날숨 또는 유지 숨에 의해 지켜진다.
35. 또는 섬세한 감각의 인식들에 대한 집중은 마음의 확고함을 가져다준다.
36. 혹은 당신 안에 영원히 지복으로 빛나는 최상의 존재에 대해 집중함으로써(마음이 확고하게 된다).
37. 혹은 감각 대상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위대한 영혼의 마음에 대해 집중함으로써(마음이 확고하게 된다).
38. 혹은 꿈꾸거나 깊은 수면을 하는 동안 경험한 것에 집중함으로써(마음이 확고하게 된다).
39. 혹은 당신을 향상시키는 어떤 것을 선택해 명상함으로써(마음이 확고하게 된다).
40. 점차로, 집중에 대한 통달은 가장 작은 원자에서 가장 큰 규모까지 확장된다.
이스와라는 최상의 뿌루샤(참자아)라고 하는데, 신에게 온 마음으로 귀의하는 헌신에 의해 삼매에 도달한다는 것은 사실 처음엔 너무나 종교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풀이에 신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요가'경'이라더니 정말로 종교색이 진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신으로부터 구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헌신함으로 신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다. 특히 24에 고통, 행위, 결실, 내적 욕망의 잠재력에 의해서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은 신은 아무런 욕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고, 그렇다는 것은 신은 해탈을 위한 욕망도 속박이라는 말까지 벗어던진 최상의 상태, 지식 그 자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풀이에도 신은 지식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요가경이 종교서적보다는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게 하고, 나를 비워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41부터 마지막 51까지의 구절이다.
41. 마치 천연의 순수한 수정이 그것 가까이 놓여 있는 대상의 모양과 색채를 지니는 것처럼 완전히 나약해진 작용을 가진 요기의 마음은 청정하고 균형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는 자,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지식 사이의 구별 없는 상태를 얻는다. 이것이 명상의 극치인 삼매다.
42. 그들의 이름, 형태 그리고 지식 가운데 혼합되어 있는 삼매는 싸비따르까 삼매, 혹은 생각을 동반한 삼매라고 부른다.
43. 기억이 잘 정화되었을 때 이름과 속성의 구분도 없이, 집중의 대상에 대한 지식만이 빛난다. 이것이 니르위타르카 싸마디이며, 혹은 생각을 동반하지 않은 삼매이다.
44. 같은 방식으로 싸비짜라(투영적인)와 니르비짜라(초월적 혹은 투영적이 아닌) 삼매들은 오직 미세한 대상들을 수행함으로써 설명된다.
45. 집중 가능한 대상들의 미세함은 한정할 수 없는 데(근본 원질)까지 가서야 끝난다.
46. 모든 이러한 삼매들은 유종자(씨앗이 있는)이며, 이것은 윤회하게 하거나 혹은 정신적인 동요를 가져온다.
47. 니르비짜라 삼매의 청정함에서, 순수한 참자아는 빛난다.
48. 이것이 리땀바라 지혜, 혹은 절대적인 진리 의식이다.
49. 이 특별한 진리는 듣거나 경전을 공부하거나 혹은 추론에 의해서 얻은 지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50. 이 삼매에 의해서 생성된 잠재 인상은 모든 다른 잠재 인상들을 지워 버린다.
51. 이 잠재 인상이 지워지고, 모든 잠재 인상이 완전히 사라진 그곳이 니르비자[씨앗 없는] 싸마디이다.
처음엔 삼매라는 말이 무척 어렵게 다가왔다. 일종의 정신력, 명상,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것, 뭐 이런 걸로 생각을 하면서 읽긴 했지만 뚜렷하게 와 닿지 않는 단어였다. 그저 막연하게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 상태, 고요한 마음으로 어리석지 않은 생각을 하는, 그래서 몸도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어야 할 것 같은 단어였는데,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삼매는 땀이 될 수도 있고, 호흡이 될 수도 있다. 요가 자체가 삼매로 가는 과정이기에 이제는 조금 더 또렷한 이미지의 삼매를 가질 수 있다.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도 삼매가 될 수 있고, 내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적어 내려 가는 것도 삼매가 될 수 있다. 요가를 하는 것도 삼매이고, 우리가 매 순간을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낸다면 그 자체가 삼매인 것이다.
푸른 하늘, 너른 들판, 좋은 공기 속에서 호흡하며 돌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명상에 빠져드는 것도 삼매이겠지만, 우리가 좁은 방 안에서 매트 하나만 깔고 요가를 하는 과정도 삼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요가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별 대단한 게 요가가 아니다. 우리가 그저 참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도 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