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래요 나 관종이에요!

by 미라쌤

“저도 선생님처럼 편안해지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프리랜서인 나는 한순간에 백수가 되었다.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것이 금지가 되고 운동 센터는 문을 닫았다. 나는 한순간에 수입이 끊겼다.

여태까지 잠을 줄이고 매일 새벽까지 커리어를 위해 준비했던 일들이 모두 한순간에 가루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될 일은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운동과 명상을 만난 후로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던 그 시기에 나는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영화 같은 상황이었던 2020년. 나는 오히려 내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만끽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이들은 신기해했고 어떤 이들은 부러워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감정이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는 조울증이었던 내가 어떻게 편안해졌을까?


57층 아파트에서 몇 번이고 뛰어내리려던 많은 날들 중 바로 그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해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친언니처럼 막역한 사이인 사촌언니에게 카톡을 했다.

“언니 나 너무 외로워. 죽을래”


언니에게 답장이 왔다.

“적당히 좀 해 너 관종이냐?”

(관종: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 관심종자의 줄임말)


아니 동생이 죽겠다는데 관종이라니..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언니가 나를 무시한다거나 무언가 가르침을 주려고 계산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약간의 지겹다는 짜증 섞인 말투와 진심 어린 충고가 담겨 있었다. 내가 그동안 관종처럼 행동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나의 목소리는 크고 과하게 웃으며 행동과 말이 오버스러웠다.


관종의 삶

어디에서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날들 중 하나가 기억난다. 승무원으로 합격하고 교육을 받기 위해 자카르타에서 6개월 동안 살았던 때가 있었다. 낯선 타지에서 함께 교육을 받다 보니 22명이었던 동기들 사이에 끈끈한 전우애가 생겼다. 영어권이 아니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문화가 달라 이래저래 부딪히다 보니 우리끼리 똘똘 뭉치게 되었다.


특히 교육을 받는 6개월 내내 버스에서 보내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우리가 지내던 호텔에서 교육센터까지 거리가 멀진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이름난 교통체증 때문에 꼬박 하루에 이동시간만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센터에서 교육을 받다 보면 머리가 지끈 아플 뿐 아니라 좀비처럼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이동할 때 혹은 연이은 공부와 시험으로 지친 동기들을 위해 나는 광대를 자처했었다. 박쥐, 목도리도마뱀 등 우스꽝스러운 동물 흉내를 내면서 스피드 퀴즈로 동기들을 웃게 했다. 인도네시안,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다 모인 운동장에서 댄스 대결을 하며 철장을 붙잡고 클럽댄스를 춘 적도 있었다. 부끄러움 하나 없는 아니 어쩌면 웃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았다.


나는 주목받기 위해 말을 항상 부풀려서 하는 버릇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나 그거 알지~ 나 그거 해봤지~ 하는 말투는 당연 내 것이었고, 한 번 가 본 곳도 여러 번 가 본 척 혹은 조금 알아도 많이 아는 척. 척 척 척. 조금 아는 것도 부풀려 말했다. 남들과 공통된 관심사로 친밀감을 높이고 어디에서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관종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유희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혼자 있으면 고독함과 외로움에 치를 떨었다. 나와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외롭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다. 술에 취하면 죽고 싶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아마도 외롭다는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조금 더 센 말로 관심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이렇게 살다 보니 그날 밤, 나에게 관종이냐는 독침을 날리던 사촌 언니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언니에게는 내가 죽고 싶단 말이 더 이상 새로운 말도 아니었고 내가 그저 관심받으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관종 소리를 들을 만큼 난 형편없이 살았다. 내가 의지했던 사람마저 나를 버린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다. 가까스로 잡고 있던 위태로운 밧줄 하나가 끊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바닥에 쿵 떨어졌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니의 한 마디에 나는 술도 깨고 정신도 깼다.


관종의 가면을 벗다

그날 나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했다. 내가 왜 관종처럼 보일까?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지금까지 가면을 쓰고 살았다. 내 마음 안은 들여다볼 생각을 못하고 사람들에게만 의존하며 살아왔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날 좋아할까 끊임없이 바깥만 보고 살았다. 그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살다가 내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다가 찬물로 얻어맞은 듯했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날 나는 진짜 나의 맨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밝은 아이인 척, 많이 아는 척,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척, 사람들을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척했다. 내 몸이 아파도 미련하게 약속에 나가며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서 동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혼자가 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구나. 부모에게 버려진 14살부터 외로웠고, 사랑을 갈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자 마음먹었다. 힘든데 밝은 척하지 않고, 내 몸이 아프면 휴식으로 내 몸을 챙기고, 사람들에게도 잘 보이고자 하는 욕심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를 보여주기 위해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로 마음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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