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욕쟁이였던 나

by 미라쌤

미국 마이애미에 놀러 갔을 때였다. 호텔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쉬고 있었다.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덥고 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순간적으로 불어오는 센 바람에 얼마 남지 않은 레모네이드가 넘어져 바닥에 엎질러졌다. 거의 다 마시고 얼마 안 되는 양이라 귀찮아서 조금 이따가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그 레모네이드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티슈를 가져와 닦으려는데 끈적끈적한 레모네이드가 바닥에 들러붙어 잘 닦이지 앉았다.


아까 바로 닦았더라면 이렇게 굳지는 않았을 텐데. 좀 더 수월하게 청소할 수 있었는데. 하고 작은 후회를 했다. 결국 따뜻한 물을 묻혀 걸레로 닦았다. 있는 힘껏 팔에 힘을 주어 박박 닦아내야만 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닐까. 조금 불편한 곳이 있다면 바로 치유해주면 좋을 텐데. 더 아파지기 전에 레모네이드 닦듯 쓱 청소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몸이 불편하다는 소리를 낼 때,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올 때 그때 그때 닦아내면 되는데 자꾸만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 두다 보면 그것이 어느새 일상이 된다. 사소한 몸과 마음의 통증이 습관이 되고 내 삶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우울증이나 더 큰 질병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면 무척 힘이 든다. 어디에서부터 닦아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고 혼란스러워진다.


조울증이 사라지다

내 몸과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팠던 서른 살이 지나고 2017년부터 명상을 만났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몸과 마음의 연결성을 알고 “나 자신 스스로에게 정직하자”라는 삶의 가이드를 세웠다. 나 자신이 어떠한 감정이든 바라봐주었다. 그리고 솔직해졌다. 최소한 나에게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나의 마음을 매 순간 알아주니 서서히 우울증이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나던 조증의 내 모습도 줄어들어 갔다.

나는 가면을 쓰고 남들에게 사랑받으려고 행동했던 예전의 관종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모습으로 살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스스로 마음을 먹고 내 삶의 한 부분씩 고쳐나가다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일기를 쓰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명상을 배운 곳에서 쓰는 수행일지였다.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불특정 다수가 보는 카페였다. 그것은 항상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내가 진짜 솔직해지는 과정이었다.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나를 인정하고 내려놓았다. 잘한 건 잘한 대로 더 잘할 수 있도록 나를 칭찬해주었다.


그렇게 매일 일기를 쓰며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니 더 이상 감출 것도 포장할 것도 없었다. 사랑과 관심에 고파 매우 가난했던 나의 마음은 점점 잘하고 있다는 희망으로 채워졌다. 그 희망은 바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또한 일기를 쓰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람들의 응원 댓글이었다. 인터넷으로 만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내 일기를 보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주었고 나도 그들을 위해 응원 댓글을 남겼다. 그렇게 나는 수행을 하면서 내 마음이 점점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욕쟁이였던 나의 과거

특히 나의 변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는 운전할 때였다. 완벽한 자신만의 공간인 차 안에서는 그 사람의 본성이 잘 나온다.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미친 듯이 열광하며 음치를 뽐내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이 생기면 찰진 욕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얼마 전에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낼 뻔했다. 밤 11시경 어두운 밤길에 울타리가 쳐져 있던 차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내 맞은편인 차도에서 걸어오고 있는데 온통 검은색을 입어서 도로랑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난 그 남자를 보지 못했고 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리는 그 사람을 하마터면 차로 칠 뻔했다.


순간적으로 ‘저 사람 미친 거 아니야?’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랐다. 잠시 차를 멈추고 비상등을 켰다. 얼어붙은 심장을 쓸어내리고 정신을 차렸다. 저 사람이 안전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주었다.


난 순간 기분이 오묘했다. 방금 한 말이 마치 남이 한 말인 듯 느껴졌다. 오랜만에 내 입에서 강한 표현이 튀어나와 나조차도 내가 낯설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썼을 표현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얀 도화지 위에 검은 잉크가 촤르르하고 쏟아진 듯했다. 내가 그동안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나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사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행동들은 물론, 욕설이나 나쁜 생각마저 통제하는 것이었다.


내가 많이 바뀌었구나.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술에 취한 사람에게 마구 욕을 했을 텐데. 놀란 내 가슴을 저 사람 탓으로 돌리기 바빴을 텐데. 이제는 내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도 낼 수 있구나. 하고 나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 자식이 학원 하나 안 보내고 수학 시험 백 점을 맞아온 듯 희열이 느껴졌다. 자식이 잘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좋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는 걸 느꼈다.


가끔 예전에 쓴 수행 일지를 보면서 그때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기시켰다. 그래서인지 마음과 몸이 아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더 공감하고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같다. 현재까지 매 순간 흔들리며 수행 중이기에 모든 사람들의 힘듦을 공감한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라고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같이 눈물 흘려줄 수 있다.


지금은 일기를 쓴 지 천일이 넘었다. 내가 걸어왔던 이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나는 이 기간을 시간이 아닌 가치로 표현하고 싶다. 그동안 내가 얻은 것은 그 무엇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아픔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아픔의 모양과 색깔이 조금 다를 뿐이다. 서른 살 내 멋대로 승무원이었던 나는 어쩌다 보니 운동을 가르치고 명상을 지도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단 한 번도 이것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기에 친구처럼 들어줄 뿐이다.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아파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픈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파서 소리치며 울고 싶은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나만 느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깊은 통증들은 티가 나지 않으니 억울하고 괴롭다. 어서 낫고 싶은데 나아질 방법도 모르겠고, 일하느라 병원 갈 시간도 없으니 더욱 서러운 날들 속에 살아간다.


나는 몸과 마음의 공부를 통해 조울증이라고 생각될 만큼 심한 감정 기복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받지 못했던 사랑을 사람들의 관심으로 채우려는 마음을 버렸다. 이제는 정직해지자는 마음으로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삶은 점점 평온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