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수행을 이어가던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삶 속에서 진정한 평화가 무언지 알게 되었다. 자연에 감사하고 내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매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큰 폭풍이 몰아쳤다. 친한 지인으로부터 천만 원을 사기당했다. 같은 시기에 훈남을 소개해주었던 친구는 여우같이 그 남자를 가로챘다. 새벽마다 잠을 설치며 준비했던 큰 프로젝트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여러모로 힘든 과정 속에도 울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생애 처음으로 건강마저 적신호가 켜졌다. 바로 난소에 혹이 생긴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오른쪽 하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맹장의 위치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맹장염 증상이 나와 대부분 일치했다. 이것은 분명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등을 펴지 못한 채 입원에 필요한 것들을 대충 챙겼다. 동네에 있는 가장 큰 내과를 기어가다시피 찾아갔다.
나를 침대에 눕히고 복부 초음파를 하던 간호사는 한참 동안 내 복부에 초음파 기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다른 간호사를 두 명이나 더 불러 모았다. 이상한 낌새가 들어 맹장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나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의사가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는 산부인과로 급히 가봐야 할 것 같다면서 나를 재촉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산부인과로 갔다. 간호사들이 부축해주어 겨우 검사를 마쳤다. 의사는 내게 대학병원을 급히 가보는 게 좋겠다며 소견서를 써주고 다음 날 병원 예약까지 해주었다.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볼 힘도 없었다. 문을 나와 대기실 소파에 앉으려다 배를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갑자기 배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고 온 몸에 힘이 풀렸다. 나는 산모들이 쉬는 침대에서 진통제 주사를 맞고 꼬박 두 시간을 잠들었다.
다음 날 대학병원에 가서 어제와 똑같은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난소 오른쪽에 8cm, 왼쪽에 2.5cm의 혹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혹이 8cm나?’ 놀랄 겨를도 없이 의사 선생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 혹이 갑작스레 뒤틀려져서 어제의 통증을 유발한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 혹 사이즈라면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제처럼 혹이 뒤틀려져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잘못하다 혹이 터지면 복막염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상황은 장기 유착으로 혹이 다른 장기에 들러붙어 더 위험해질 뿐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리도 급하게 수술을 말할 줄은 몰랐다. 의사 선생님은 더 정확한 걸 알기 위해서 CT 촬영을 권했고 2주일 뒤로 다시 예약을 잡았다.
수술해야 할까
나에겐 아무 결정권이 없는 듯 보였다. 서른 살 초반. 현재 결혼도 안 하고 남자 친구도 없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니. 마치 내 삶에 빨간 줄이라도 그어지는 것 같았다. ‘임신하는 데는 괜찮은 건가. 아니 복막염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데 몇 년 뒤가 될지도 모르는 임신 걱정을 하다니.’ 내가 참 한심했다. 인터넷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경화술? 개복이 아니라 주삿바늘을 꽂아서 혹에 차 있는 피를 뽑아내는구나. 아 이건 별로 위험하지 않겠다. 그래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을 만나보자.’
그리하여 다른 세 군데의 대학병원을 더 가본 결과는 역시 같은 말을 들을 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미 혹이 너무 커져있었다. 그동안 총 네 군데의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힘들었던 건 내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아닌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어렵게 예약을 잡는 과정과 기다리는 날들 속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증폭되었다.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했던 한줄기 희망은 의사 선생님들의 차가운 눈빛과 권위적인 말투 속에 산산이 무너졌다.
“경화술은 안 되나요” 조심스럽게 물었던 내게 의사 선생님은 그런 건 또 어디서 듣고 왔냐며 전문가인척 하지 말라는 차가운 눈빛과 말투로 쏘아붙였다. 주눅이 들어 말하기가 눈치 보였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명령하듯 말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수술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수술 일정이 너무도 많아 3개월 뒤에나 수술이 가능하다는 절망의 대답이 돌아왔다.
참 아이러니했다. 수술을 빠르게 해 주지도 못하면서 왜 당장 위험할 거라는 겁은 잔뜩 주는지.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지. “수술 날짜를 좀 더 빨리 잡아주실 순 없나요” 주눅이 들어 잔뜩 움츠린 어깨로 나는 처절하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난소에 혹이 생겨 수술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냉소적인 태도의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게 내게는 더 힘든 일이었다. 이런 선생님에게 내 몸을 맡겨야 한다니. 수술 날짜를 빨리 잡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니. 왜 내가 죄지은 사람처럼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몸이 아파 안 그래도 서러운데 현실에 굴복하는 내 존재가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술을 하루빨리 받으라는 말에 내 마음이 초조해졌다. 다행히도 주변에 발이 넓은 지인의 아버님이 계셨다. 그분을 통해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어렵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은 2주 뒤였다. ‘수술하면 괜찮겠지 별거 아닐 거야’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용기를 주었다.
그때, 처음에 갔던 대학병원에서 CT 촬영 예약 문자가 왔다.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지금 아니면 또 한참을 기다릴 수 있으니 우선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나는 좀비처럼 아무런 기대와 희망이 없었다. 기계처럼 움직였다. 미로 같은 대학병원을 걸어서 접수 절차를 밟고 대기실에 앉았다. 병원의 하얀 벽을 바라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간호사가 조형제를 투여했다. 속이 메스꺼웠다. ‘수술만큼 아프겠어’ 하고 울렁이는 심장을 안심시켰다. 모든 검사를 다 마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약물치료는 어때요?
방은 따스했지만 공기는 적막했다. 내 몸이 해골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CT 사진과 초음파 사진을 번갈아보시고 내게 물었다. 미혼인지 그리고 임신 계획의 여부에 대해서 물으셨다. 난 임신 계획이 전혀 없는 미혼이라 했다. 선생님은 수술하기 전 약물치료를 해보면 어떻겠느냐 하셨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난소의 기능이 줄어드니 최대한 다른 방법을 써보자고 하셨다. 여태 만나온 의사 선생님들과 다를 것 없이 느껴졌던 박 교수님이 조금 따스해 보였다.
박 교수님의 말투는 명령조가 아닌 청유형이었다. 담담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말투에 신뢰가 갔다. 난 지인의 소개로 어렵게 잡아놓은 수술을 놓칠까 두려움이 일어났다. 이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니 박 교수님은 언제든 위험한 상황이 오면 내가 일정을 잡아 수술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내가 해주겠다는 든든한 믿음이 담겨있는 말. 이 한마디에 나의 마음이 몽글몽글 풀어졌다. 그동안 난소에 생긴 혹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으로 한없이 긴장했던 나의 마음이 마치 봄에 벚꽃이 만발하듯 환해졌다.
그렇게 난 약물치료를 하기로 했다. 3개월마다 병원에 가서 정기 검진을 하고 약을 받았다. 난소 기능을 체크하고 골밀도 검사도 받으면서 내 몸을 살폈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작은 희망이 내게 다가온 듯했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겐 큰 기대로 다가왔다. 난소의 혹을 알고 나서 명상을 알려준 선생님께서 내게 300배 절 수행을 해보라고 권하셨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내려놓아지고, 절의 동작이 몸의 순환을 도와주니 몸이 좋아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혹이 사라진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300배를 했다. 무척 더운 여름에도 땀을 흘리며 매일 절 수행을 했다.
100일 정도 되니 이제 300배가 무척 가벼워졌다. 30분이면 척척 기계처럼 절을 했다. 이제는 이 정도 가지곤 땀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절수행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100일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무언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것에 집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이것만 하면 내 몸이 다시 태어날 거라는 신비감과 이것으로 인해 난소의 혹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와 집착이 올라왔다.
마치 숙제처럼 여기며 내 몸을 움직였던 것이다. 나는 절 수행이 내 욕심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절 수행을 하고도 혹이 줄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절에 대한 불신으로 변하고 예전처럼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탓하는 마음이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그저 내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