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자원봉사 기록_2장

올림픽 개회식 그리고 첫 근무

by 재아로하자



7월 26일

올림픽 개회식이 있던 날이다.

올림픽 개회식은 에펠탑이 있는 센 강을 따라 약

6km를 움직이며 진행됐다.

올림픽 개회식을 위해 센 강 주변은 3단계

( 블루 존, 레드 존, 그레이 존 )로 나누어

통제를 했는데, 블루 존은 사람과 자동차가 모두 지나다닐 수 있는 구역이고

레드 존은 사람은 지나다닐 수 있으나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한 구간이고

그레이 존은 완전 통제 구역이었다.

다만, 원래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거나 반드시 그레이 존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경우

PASS JEUX라는 허가증을 받으면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말은 즉, 그레이존이 개막식이 열리는 장소와 가장 근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애초에 그곳을 통과할만한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굳이 허가증을 신청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

그레이 존에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허가증을 신청했더니 승인이 됐다는 것이다.

나도 25일 밤 허겁지겁 근처 미술관을 예약하고

PASS JEUX를 신청했으나

보통 허가받는데 2주가 걸리고 봉사자 친구도 3일 정도가 걸렸으니 허가 날리 만무했다.


때문에 딱히 큰 아쉬움은 없었고 앵발리드 근처에 위치한

팀코리아 하우스에 방문해서 한국 사람들과 스크린으로 단체 관람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딱 우리나라 선수단이 탑승한 보트가 나오기 직전 집으로 향했다.


센 강과 에펠탑은 아름다웠고 셀린 디온의 노래는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가 알린 첫 신호탄과 셀린 디온의 노래로 마무리한 개회식에서

프랑스만의 것으로 채울 수만은 없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점에서 조금 아쉬웠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끝난 개회식을 끝까지 보느라

비가 와서 젖은 몸을 샤워하는 것도 미뤄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야 다음날 있을 첫 근무를 위해 눈을 붙일 수 있었다.





7월 27일

첫 근무날이었다.

14호선의 saint denis역에

내려서 stade de france까지 가려면

약 20분을 걸어야 하는데, 걷는 내내 어떤 사람이 있을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있을지 등

어느 누구도 이 상황에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떠올리며 근무지로 향했다.


난관은 근무지 입구부터 시작됐다.

8만 명을 수용하는 큰 경기장이라 입구가 A부터 Z까지 있었는데

모든 입구에서 사람들을 들여보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입구에 가서

"저 여기로 들어갈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았고

4번의 물음과 3번의 답변 끝에 A Bis ( 입구 A 옆쪽으로 근무자들의 소지품 검사와 AD카드 인증을 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에서 스타디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왜 4번의 물음과 3번의 답변이냐면

한 명은 아무리 뒤에서 불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디움에 들어서자마자 다음 미션이 시작됐다.

우리 팀 ( Transport Team, 프랑스어로 l'équipe transport )을 찾는 것이었다.

또 눈에 띄는 봉사자를 잡고 물어봤다.

"봉사자들은 어디서 모이나요?"

나에게 붙잡힌 봉사자는 스타디움의 A구역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도착해 보니 그곳은 자원봉사자 센터였다.

그곳에는 봉사자들이 쉴 수 있도록 소파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안내 데스크가 있었으며 간단한 먹을 것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길을 헤멜 것을 알고 집에서 일찍 나왔기에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하다가 촉박하게 남은 시간을 보고

다시 우리 팀을 찾으러 향했다.


파리 자원봉사단은 webex ( 카카오톡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에서

근무와 관련된 대화가 오가는데, 거기서 분명 T 입구에서 모인다고 했다.

그래서 T 입구로 갔다.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여기가 Transport 팀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럼 우리 팀 어딨 냐고 다시 물었다.

그들이 알리가 없다.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만 약 2500명이 일하니까 말이다.


도저히 우리 팀을 찾을 수 없어서

webex에 어디로 가면 되냐고 질문을 했다.

Porte T ( T 입구 ) 근처에 있는 bungalow에서 모인다고 답장이 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입구 옆에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transport team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첫 근무가 시작되었다.

*입구 T 앞에 있는 Bungalow


나의 첫 임무는

버스가 오는 시간표에 맞춰서 동선이 꼬이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같이 일하는 두 명의 친구 중 한 명은 프랑스 사람이었고

한 명은 스리랑카 사람인데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언니였다.

두 명 다 영어를 잘해서 소통은 편했다.

그러나 첫날이라 근무지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프랑스어도 잘하지 못해서

일을 하다 버벅거릴 때 자책을 하곤 했는데,

일을 버벅거리는 원인이 매니저들도 업무를 명확하게 숙지하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나는 올림픽이 여러 차례 개최 되었다 보니 매뉴얼이 있는 줄 알았으나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진행되다 보니 세세한 매뉴얼은 상황에 맞게 즉석에서 수정되는 것 같았다.)


약 2~3시간 정도 근무를 하다가

매니저가 나에게 특정 집단(협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걸러 그 사람들만 전용 도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검열하는 업무를 맡겼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 모두를 상대해야 했기에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특히 몇몇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말 무자비하게 빠른 속도로 말을 걸어오는데

그때마다 내 옆에 있던 세네갈에서 온 시큐리티 친구가 도움을 많이 주었다.


사람이 없을 때면 친구에게 이런 건 프랑스어로 어떻게 얘기해?라는 식의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내가 마트에서 계산하고 영수증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Non 말고 더 예의 있는 말이 뭐냐고 물어보니

Non, Merci (No, Thanks)라고 하라고 했다.

동시에 예시를 들어주었는데

“만약 내가 너한테 우리 집에 차 마시러 오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하면 돼. “라고 하길래

뭐지? 플러팅인가? 싶었는데

언어의 장벽이슈로

하하~알겠어하고 대화는 마무리됐다.


밤 11시 10분쯤, 경기장에 사람이 거의 빠져나가

집에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입고 있던 주황색 재킷을 반납한 뒤

14호선으로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프랑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어서

프랑스어 브이로거의 유튜브를 시청하며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오늘부로 알게 됐다.

프랑스어를 알려주는 프랑스인 브이로거의

말하기 속도는 정말 느린 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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