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행복: 일상이 행복이다

파랑새

by 유동재

유엔총회는 2012년 6월 28일 유엔 자문관이자 경제학자 제이미 일리엔 제안에 따라, 3월 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정했다. 그는 인도 콜카타(Kolkata) 빈민가 고아 출신이다. 훗날 평화와 안보를 위한 경제학자들 모임이라는 NGO 비정부 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국제사회 성장이 인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취지를 내세워 '세계 행복의 날'을 제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제성장이 빈곤 종식과 불평등 해소에 그치는 않고 인류 행복을 증진시켜야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으면 못 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주 행복을 느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서 교수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 했다. 아무리 큰 행복도 순간이다. 크건 작건 모두 찰나다. 그렇다면 빈도를 늘리는 것이 현명할지 않을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다. 평생 이벤트는 몇 번 없다.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필요한 이유다.


미국 고등학교의 하버드라 불리는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HARKNESS TABLE 육으로 유명하다. 미국 석유재벌 Edward Harkness가 신 교육방식을 고안하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학교 측에 제안했다. 교사와 학생 12명이 모여 둘러앉아 토론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 사고하고, 질문하고 그리고 토론하는 수업방식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의사 표현능력을 키워 준다. 질문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는 슬로건 하에, 창의적 인재육성에 크게 일조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들은 수없이 많을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정답일 수 없다. 각자가 정하는 자답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교양선택과목으로 '동양의 지혜'라는 강좌를 수강했다. 동양철학과 관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사람은 ''하는 삶이 아니라 '락'하는 삶을 살라"라고 말씀하셨다. 기쁘기보다는 즐겁게 살라는 뜻이다. 기쁠 희와 즐거울 락의 차이를 알지 못했던 나는 교수님께 여쭤봤다. 교수님은 예를 들어주셨다. "맛있는 음식을 내가 먹으면 기쁜 것이고, 맛있는 음식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먹으면 내 맘이 즐거워진다. 그것이 락이고 행복이다."라 했다. 결국 행복은 혼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0년 미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미국 일주를 한 달간 하였다. 로스앤젤레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 비벌리힐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라스베이거스, 그랜트 캐니언, 우주항공기지 NASA, 워싱턴 DC, 뉴욕 월스트리트, 자유의 여신상, 하버드대학, 나아가라 폭포 등을 혼자 다녔다. 책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미국 유명 관광지를 다녔지만, 잠시 와우 할 정도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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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캐머런 크로우 감독은 "제리 맥과이어" 드라마 영화를 만들었다. 잘 나가던 스포츠 에이전트가 회사 이익에 반하는 제안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자신과 함께 동료를 찾지만, 모두들 냉담한 반응이었다. 낙담한 제리가 회사를 떠나려는 순간, 그를 짝사랑한던 미혼모 도러시 보이드가 그를 따라나선다.


제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롤 뽑힐게 확실한 유망주 쿠쉬가 있었다. 쿠쉬는 예전부터 제리와 가까운 사이였고 구두로 제리와 계약하기로 합의한다. 이 소식을 제리는 도러시 보이드에게 전한다. 이때, 그녀는" I am happy for you(너 덕분에 기쁘다)"라고 답하자, 제리는 "I am happy for us (우리 때문에 행복하다)"라고 고쳐 준다. 그렇다. 행복은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접할 수 있는 느낌이다.


1908년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 링크는 6막 10장의 파랑새라는 희곡을 썼다. 틸틸과 미틸 남매가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으러 길을 떠나지만 실패한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새장에 안에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비롯된 파랑새 증후군이 유래한다. 오늘보다는 내일을 꿈꾸는 증상이다. 그러나 행복은 일상이다. 이벤트가 아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행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무조건 행복해야 된다는 강박감을 갖는다. 행복하지 않으니 난 불행하다. 돈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 성공해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착각한댜.


본질적으로 행복은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객관적인 조건과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남보다 무조건 나아야 한다는 생각은 행복을 저해하는 가장 주된 원인이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은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라는 공감대를 느낄 때, 생활에서 느끼는 넉넉함과 흐뭇함이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파랑새는 이미 내 손안에 있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임을 자각하고, 주체적인 삶을 통해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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