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falta es bendición.
1998년,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김포 국제공항에서 미국을 경유해 중남미 멕시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마주친 대부분의 금발 여자들은 미인처럼 보였다. 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전까지 국내에만 머물며 보았던 내 주변의 한국 여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척 이뻤던 것을 기억한다.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속했던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 사대주의를 심봉했다. 살아 남기 위함이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이 된 세계 속의 한국은 사실상 유일한 슈퍼파워 미국을 추종한다. 그래서일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의 판단기준은 미국인 듯하다. 미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다. 매년 열리는 이 대회에서 선발된 대다수의 진*선*미들은 하나 같이 뚜렷한 이목구비의 작은 얼굴과 긴 다리 그리고 34-24-34의 늘씬한 서양인 체형을 갖고 있다. 복스러운 얼굴에 아담한 몸매의 한국 전통미와 이제 거리가 있다.
대부분 참가자의 얼굴과 외모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 눈, 코, 이마, 턱관절 등 고치고 싶은 모든 부위에 칼을 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미스코리아 대회는 타고난 미모를 겨루는 장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위는 가차 없이 성형외과의사에게 고치게 만든다. 그래서 자연미가 아닌 인공미를 겨루는 성형의들의 작품전을 보는 듯하다.
얼마 전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 씨의 외모 기사들이 화제였다. 검색을 통해서, 그녀의 성형 전후 비교 사진을 보았다. 동일인이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의 성형미용술 발전이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 더 이뻐지고, 더 젊어지려는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겠나?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서구화 시대에, 미국 백인처럼 작은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원하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요가 증가할수록, 한국 성형미용술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발전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상당한 많은 중국 여자들이 발전된 성형미용을 위해 한국에 입국했었다. 패키지 단체 의료관광이었다. 한국 성형미용의 메카는 강남이다. 성형전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사진으로 수술을 강권하는 광고판들과 거리에 즐비한 성형외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느새 성형미용은 사업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그로 인해, 성형미용산업과 화장품산업의 발전은 눈부셨고, 이제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되었다. 부족함은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안겨줄 수 있는 축복일 수 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Nece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라 말했다. 부족함을 찬양하는 말이다. 만약 부족함이 없다면, 세상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족함은 변화를 꿈꾸게 하고, 변화는 도전으로 통해 구체화되어 결국 성장을 이룩하기 때문이다. 어원적으로 니즈(needs)는 원래 필요하다, 부족하다는 뜻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함은 축복이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최대 빈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며, 한국의 기적을 이룬 현재, 우리는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가진 것이 너무 없어 부족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MZ세대는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부분은 형제자매 없는 외동들이다. 왕자와 공주처럼 태어나 자란 세대이기에 단체생활보다는 개인생활에 더 익숙하다. 부족함이 없는 MZ세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 없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꿈이다. 꿈이란 부족함에서 비롯되기에, 풍요 속에서 자란 MZ세대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고, 내일의 꿈을 꾸기가 쉽지 않다. 오늘이 즐거운 것은 내일의 꿈이 있기에 가능하다.
고도성장이 멈춰 저성장에 빠진 한국경제는 더 이상 경제 파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경제발전에 따른 사회적 눈높이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래서일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니, 삼포세대 + 주택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다는 오포 세대니 불평하는 헬조선 타령이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수저 타령에 한국이 시끄럽다. 모두 맞는 소리다. 살기가 쉽지 않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절망적인 것 같다. 그러나, 마냥 주저앉아 신세타령만 하기엔, 우리의 삶이 아깝지 않은가?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부족함은 축복이다. 없다고 포기하기보다는 언젠가 반드시 갖겠다는 꿈과 계획을 세워,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면 어떨까? "웃어라! 모두가 웃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만 울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나 자신도 포기한 나를 누가 도와줄 것인가?
19세기 후반, 미국 매세추세스 대학 총장을 지낸 농업학교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는 일본 홋카이도의 개척 위해서 삿포르 농업학교에 초빙되었다. 그는 선진 낙농업을 일본 홋카이도에 정착시킨 개척자가 되었다. 소임을 마친 클라크 박사는 삿포르 농업학교 학생들과 송별회에서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e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 이기심, 명성 같은 덧없는 것이 아닌, 사람이면 마땅히 갖춰야 할 가치를 위해서)
먼저, 부족함을 인정하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방법이 생긴다. "실패한 자는 변명을 찾고, 성공한 자는 방법을 찾는다" 말이 있다. 부족함을 남 탓으로 돌리며 변명하지 말고, 부족함을 채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부족함은 재앙에서 축복으로 바뀐다. 시작이 반이다. 방법을 찾으면 실천해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족함을 채우는 여부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