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신과 진단을 받고 난 이후였다.
당시 내 글은 방향도, 목적도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을 기록하여 조금이라도 살아 숨쉬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살아남는다면, 왠지 ‘그때의 나’를 ‘미래의 나’가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기록을 정말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입원’이었다.
사실 입원을 하면 프로그램들을 다 참여한다고 해도 시간이 정말 많이 남는다.
당시 소아청소년이었던 나는 강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도 꽤 있었지만,
거부한 적도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하기 싫었다.
이런 내용들도 다 적혀있어서 가끔 일기장을 들춰보면 그 당시의 내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입원을 했을 때 내가 뭐 하나 보면 한결같이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
병원에 전자피아노가 있어 피아노를 칠 때도 물론 있었지만,
피아노를 안 치는 날은 있어도 글을 쓰지 않는 날은 없었다.
산책이 되면 산책하고 글을 썼고,
외출이 되면 외출 끝나고 병동에 와서 글을 썼고,
외박이 되면 집에 도착해서 쓰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어땠냐, 하루 종일 글만 쓰고 앉아있었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림과 글을 번갈아가며 했는데, 상대적으로 글 쓰는 빈도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당시 주치의도, 교수님도 당연히 이런 건 알고 계셨다. 물론 간호사님도 알고 계셨고.
교수님이 회진할 때, 그때그때 적지 말고 하루의 마지막에 쓰거나 그런 건 어떻겠냐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러면 기억이 안 난다고.
이 말이 거짓말 같을 수도 있지만, 당시 나의 기억력은 상당히 안 좋았다.
그래서 매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 글을 썼다.
방향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냥 무작정 앉아서 글을 써 내려갔다.
너무 힘들어서 글을 붙잡았다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난 병원에서 마저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무덤덤한 척을 해왔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글을 붙잡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떤 내용이든, 글을 쓰면 나아졌고 힘든 건 조금 경감되는 느낌이었다.
할 게 없어서 쓴 것도 맞지만, 정말 할 게 없어서 쓴 것이라면 퇴원을 하면 쓰지 않았어야 한다.
나는 입원을 마치고도 글을 써내려 갔다.
오히려 입원 전보다도 글을 더 길게, 더 많이 써 내려갔다.
정말 틈만 나면 글을 썼고, 자퇴하기 직전까지는 학교에서 수업 안 듣고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때는 생존의 문제 이긴 했다. 수업을 듣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나의 기록은 생존과 마찬가지였다.
원래의 기록은 그림이었지만, 그림은 생각보다 도구의 제약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종류, 아무 색인 펜 하나만 있으면 되는 글을 택했다.
나에게 있어 그림이라는 기록은 버티게 해 주었고,
글이라는 기록은 나를 회복하게 해 주었다.
방향은 없었던 기록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오히려 초반에는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하찮아 보여도 그 당시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한 것 같다.
초반의 기록들 중 방향이 있는 기록이 얼마나 있냐고 하면 없다고 답하겠다.
글의 주제도 없고, 두서도 없다.
입원 때의 글도 늘 하루일과만 적혀있고, 더 마음을 탐구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게 나의 한계였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별이 바로 나였다.
그러다가, 아주 천천히 방향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