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잘랐다.
아빠는 손을 씻고 오라고 한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간다. 막 손을 닦고 나온 수아와 마주친다. 내가 수박을 잘랐다고 하니까 수아는 바로 식탁으로 간다. 빠른 걸음으로 간다. 접시를 들고 후다닥 내 방으로 들어간다. 기분 좋아 보인다. 수아가 수박을 저렇게 좋아했나.
수아와 배를 깔고 드러누워 같이 먹는다. 같이 만화책을 보면서 깔깔 웃고 똑같은 게임기를 쥐고 함께 씨름하기도 한다.
게임으로 내기를 한다. 달리는 자동차로 내가 금세 수아를 제친다. 수아는 지고 나서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나한테 벌칙으로 이천 원을 빼앗기고도 아주 좋아 보인다. 나는 슬금슬금 수아의 눈치를 본다. 수아가 왜 저럴까.
"너 무슨 좋은 일 있어?"
수아가 가슴을 쭉 펴고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대답한다.
"응, 나 좋은 일 있어."
"뭔데?"
수아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쉽게 알려주기 어렵다는 듯이. 나는 먹던 수박을 내려놓고 수아의 어깨를 흔든다. 뭔데, 뭔데?
"나 상 받았어."
수아가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에이, 뭐야. 나는 무슨 상이냐고 묻기 싫다. 뻔하지 뭐. 또 수학 올림피아드 뭐 그런 거겠지. 나는 김이 빠진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인다. 와, 대단해라. 박수도 조금 친다.
"뭐냐고 안 물어봐?"
"뭐, 경시대회 아냐?"
"아니야."
수아가 삐진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나도 앉는다. 뭐길래 그래, 궁금해져서 물으니까 그제야 수아가 다시금 고개를 빳빳이 하고 말한다.
"백일장 장원이야."
무척 뿌듯해 보인다. 나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린다. 또 박수를 쳐줘야 하는데 손이 안 움직인다. 난 장려상 받았는데. 글쓰기 내가 더 좋아하는데. 수아는 원래 좀 눈치가 없다.
자랑한 후에 수아는 앞에서 수박을 잘 먹고 있다. 나는 더 먹을 수가 없어서 뚱하니 바닥만 보고 있다. 수아는 여전히 눈치가 없어서 수박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고개를 조금 들고 겨우 대꾸한다.
"근데?"
그냥 물어본 건데 괜히 시비를 거는 것처럼 돼버린다.
하지만 수아는 눈치가 정말 없기 때문에 시비가 걸렸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그냥? 근데 무슨 내용이게?"
"무슨 내용인데?"
"윤이 너랑 게임 하다가 내가 이긴 얘기야."
어이가 없다. 웃음이 터진다. 내가 와하하 웃으니까 수아도 앞에서 따라 웃는다. 근데 왜 웃는지 이유는 모르는 것 같다. 그것도 정말 어이가 없다.
“다 너랑 논 걸로 썼어.”
"너 맨날 나한테 지잖아."
"야, 내가 먹으면서 해서 그래. 내가 진지하게 하면 너 이겨."
"야, 그럼 수박 먹지 마라. 한번 그냥 해 봐."
그래? 그래라. 수아가 다시 배를 깔고 누워서 게임기를 쥔다. 나를 흘깃 보면서 배시시 웃는다.
"진짜 내가 이긴다?"
바깥에서 아빠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게임을 하고 있다 보면, 아빠는 문을 똑똑 치더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떡볶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동시에 배고프다고 한다. 아빠는 이 모습을 좋아한다. 이 장면을 좋아한다. 밝아진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수아랑 노는 게 더 좋아진다. 나는 수아를 흘깃 보고서 배시시 웃는다.
나도 언젠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엄마가 없어도 잘 사는 아빠, 수박을 잘라주는 아빠, 떡볶이 만들어주는 아빠 이야기. 그러면 수아는 주인공 친구 정도로 끼워줘야지.
수아는 우리 아빠 피부가 까맣든 엄마가 있든 없든 신경 안 쓴다. 사람들이 뭐라 하는데 수아는 잘 모른다. 참 이상한 애라서. 이런 건 눈치가 없어서 좋다. 수아하고는 계속 오래 친구 할 것 같다. 오래 오래 하고 싶다.
이번에도 수아는 게임에서 졌다. 이천 원을 더 뜯기고도, 수아는 의젓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