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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영 Nov 08. 2020

무덤덤함이란

<별의 반짝임 1, 2>, 종이에 수채·연필, 18.5x25cm(낱장), 2020.8.



옛 친구와의 오랜만의 만남. 서로 힘내자며, 조만간 또 연락하자며 헤어질 때 우리가 당분간은, 아니 어쩌면 다시는 서로를 찾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인연과의 이런 식의 조용한 이별이 30대에는 종종 일어났다.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이런 느낌을 무척 힘들어했다. 각자가 걷는 길이 달라지면서, 가치관이 변하고 서로의 고민에 신경 쓸만한 정신적 여력이 고갈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된 현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현상의 원인을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서 굳이 찾으려고 애썼다. 존재하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으로 오랜 우정의 끝이 남긴, 그 모호하고 깔끔하지 않은, 씁쓸한 감정을 풀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느꼈던 씁쓸함의 정체는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세상 만물의 거대한 이치에 대한 무력감, 허망함에 가까운 것이었던 것 같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의 나는 그 감정을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이런 일에 놀라울 정도로 덤덤하다. 어쩔 수 없는 거지,라는 식으로 이 느낌을 단번에 덮어버린다. 나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 변한 걸까? 강해진 걸까? 냉정해진 걸까? 아니면... 더 약해진 걸까?  무덤덤함 속에서도 마음 저변의 무언가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이 느껴진다.


혹시 무덤덤함이란 약한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 같은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와 다름없이 약한 내면을 감추고 보호하기 위해 이 갑옷을 두껍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이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아이같이 여린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닐까? 무덤덤함이라는 갑옷이 잠깐 풀어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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