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의 사소한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단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덜해지긴 했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그저 잠깐 스치는 인연에 불과할지라도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대로 타인이 나를 본 것 같지 않으면 그 일에 어리석을 정도로 오래 붙들렸다.
내가 보여주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모습, 타인이 내게 기대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모습.
각기 다른 의도를 지닌 이런 시선들이 부딪히고 비껴가면서 생기는 온갖 종류의 간극에 나는 일일이 다 반응했다. 그만큼 내면이 불안정했고, 사람들 앞에서 실수도 잦았다.
모든 간극이 힘들었지만 그중 유독 나를 괴롭힌 것이 있었다. 그건 '그림을 그리는 나'와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라는 두 자아를 두고 발생한 시선의 엇갈림이었다. 타인이 나를 어느 쪽에 맞추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겪었던 괴로움의 성격도 완전히 달라졌다.
2.
학창 시절의 나는 주로 ‘그림 그리는 아이’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내 곁에는 늘 그런 나를 좋게 봐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나는 나이에 비해 무척 어른스럽고 다정했던 그들의 태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그림으로 칭찬받고 싶다’라는 욕망 외에는 다른 일에 큰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아이였다. 조금만 힘들거나 무서우면 그림 속으로 숨어버리려는 겁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그들과의 사이가 멀어진 이유를 당시엔 이런저런 추측만 하다 말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나 때문이었을 것이라 거의 확신한다. 그들은 그림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 너머 나의 미성숙한 모습에 실망해서 떠나간 것이다.
그림 재주 때문에 실제보다 성숙한 사람처럼 보였던 나는(결코 내 의도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나의 내면이 기대보다 얕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조용히 정을 떼버린 것이다. 나는 또 나대로 그들이 떠난 이유를 몰라 혼자 끙끙대며 속상해했다.
3.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들어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회가 알아서 나를 그렇게 봐줄 것이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내 머리 위로 '그림'이라는 단어가 항상 수호신처럼 따라다니는 줄 알았다.
사람들이 내게서 ‘그림’을 연상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종류의 평가와 미묘한 무시를 반복해서 겪으면서부터였다. 예를 들어, 나의 편하고 단조로운 옷차림이나 어색한 순간마다 웃어넘기는 습관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내게 붙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그림이 떨어져 나간 나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낯선 프레임에도 자꾸 걸렸다. 이상했던 점은 일단 하나의 프레임이 씌워지고 나면, 그 후에 '그림'이라는 단어가 그 안에 첨가되기는 무척 힘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그림 그리는 나'의 이미지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자신이 지닌 여러 면모 중 가장 애정하는 부분이 제거된 채 평가받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림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잠재된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는지도 깨달았다. 그림은 내게 일종의 수호 부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부적은 내가 방심하면 언제든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4.
두 종류의 간극 모두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타인이 나를 실제보다 과하게 좋게 평가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설 때의 부끄러움과 쓸쓸함, 남들이 나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할 때의 서러움과 억울함. 어쨌든 둘 중 하나의 간극은 선택해서 살아야 했다.
가장 가까운 과거의 경험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첫 번째 간극을 택했다. 이미 자존감이 많이 다친 상태라 더 이상의 평가의 타격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그릴 수 있든 없든, 일단 '그림 그리는 나'의 이미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의 못난 모습을 흐릿하게 가려줄 그림이라는 안개가 필요했다.
그런데 하나의 간극을 택하자 역시 예상했던 문제가 따라왔다.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나는 관계를 피하게 되었다. 과거에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그림을 떼어놓은 내 모습에 실망하고 떠날까 봐 아예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 자체를 줄이게 된 것이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 그릴수록, 그림이 쌓이면 쌓일수록 타인과 나 사이의 벽도 조금씩 두꺼워지고 있다.
5.
문득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종이 인형이 생각난다. 100원짜리 동전을 손에 꼭 쥐고서, 문방구 구석 선반에 쌓여 있는 종이 인형들을 한 장 한 장 들추어 보며 고르는 일이 어린 나의 즐거움이었다. 인물이며 옷이며 구두며 4절짜리 종이에 인쇄된 만화 그림들을 정성껏 오려내는 일에서 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나중에는 인쇄된 것만으로 만족 못 하고, 갖가지 물건들을 삐뚤빼뚤 그리고 오려 인형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 갔다.
그 장난감 만들기에 그렇게 정성을 들였던 이유는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워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것들을 가지고 이웃집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종이 인형들이, 내가 그린 그림들이 오히려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있다. 그림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림을 넘어서서 직접 타인을 만나는 일은 이제 버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