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자꾸 피하게 된다. 그들 앞에서 나오는 나의 어떤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서. 낡은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데, 그래서 매일 다짐의 못질을 반복하며 자신을 허물고 있는데, 익숙한 지인들을 만나면 부서진 조각들이 금세 복구되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되살아난 구태의 나의 모습은 귀갓길에 고스란히 새로운 자학의 재료가 되어 나를 고문한다. 반가움의 열기 속으로 흩어져 버린 노력에 대한 상실감과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 데 대한 혐오감이 날이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어져서 이제는 모임 건수가 생기면 못 나갈 핑계부터 찾는다.
만남을 피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혹시 상대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삐딱하고 불안정한 내 마음이 특정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여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될까 봐 무섭다.
사실 강도는 약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이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공격적인 언행으로 인해(상대에게 전혀 유감이 없었는데도) 찰나의 순간 친구의 표정이 굳어버린 것이다. 그 표정이 거의 일 년 가까이 나를 그 상황에 묶어두고(지금 떠올려도 아찔하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의 가시로 연신 찌르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두운 자아가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모르니, 차라리 더 이상 친구를 만나지 않는 편이 관계를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굳혀졌다.
이렇게 과거의 내가 싫어서, 또 만약의 죄를 방지하고 싶어서 만남을 줄여가다 보니 오래된 인연의 끈이 하나둘 끊어지고 있다. 왜 이렇게 자학이 심해졌을까? 왜 이렇게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건 내가 그만큼 절실히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변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사실 나는 내 주변의 그 누구보다 오래, 고집스럽게 변화를 거부해 온 사람이었다. 가장 오래 한 곳에 정체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나이에 맞게 미래로 흘러가면서 변화했기 때문에 멀어지는 과거를 아련한 추억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면, 나는 과거에 계속 머문 채 현재를 빨아들였기 때문에 추억이라는 열매가 맺어지는 도중에 썩어버렸다. 그들은 변화했기에 과거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면, 나는 변화하지 않고 과거와 엉켜 살았기 때문에 과거가 지긋지긋해졌다.
미루고 미룬 변화를 이제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흘러가야 할 것 같다. 이곳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형성될 때까지는, 과거가 확실하게 과거로 여겨질 만큼 내가 다른 시공간 속으로 넘어갈 때까지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새로운 경험의 물결을 타고 정신없이 흘러가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보았을 때 이곳이 하나의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남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변했으면 좋겠다.
다음 섬에 다다를 수 있을까? 너무 늦은 출항이라, 너무 낡은 배라 중도에 좌초되는 건 아닐까?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변화에 더딘 기질로 태어난 것, 그래서 오래 머뭇거리다 늦게 움직이는 것, 넓은 세상을 활보하지는 못할지라도 좁은 영역 안에서 소소한 변화를 음미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번 생에 내가 받은 삶의 지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