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모님의 먹먹한 노후 일상
“내가 여태까지 내 뜻대로 살았는데 이 나이에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기 싫다니까!” “나는 단체생활이 안 맞는 사람이야. 조용히 뭐 듣고 공부하는 거면 또 몰라. 가서 노래하고 운동하고 그런 거 싫다고.” “내가 치매 걸릴까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걱정마라. 부처님 믿는 사람은 치매 안 걸린다.” “그게 그렇게 좋으면 왜 노인정 노인들은 왜 아무도 안 다니는 건데?” “머리 허연 노인들만 득시글해서 싫다. 늙을수록 젊은이랑 어울려야지.”
월요일 아침, 설명하고 설득하고 부탁하고 화를 냈더니 기운이 쪽 빠진다. 그래 포기하자. 엄마 말 하나 틀린 거 없다. 다니시면 확실히 신체 건강에도 치매 관리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저렇게 거부하시는데, 어쩌겠나. 이 과정까지 오는 데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제법 썼지만 미련두지 말자. 최근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읽으며 뜨끔하지 않았던가. 데이케어에 보내는 건 (노인 본인이 아니라) 가족들을 위하는 거라고. 어린이집 가는 거나 마찬가지로 싫은 거라고. 누구나 자신의 익숙한 공간에서 맘 편하게 있고 싶다고...
“자부님이시죠?”
장기요양보험등급을 신청하고 담당자 방문 시 갑자기 총기를 마구 발휘하셨지만(브런치 6화 참고)전문가의 안목인지 의사소견서의 힘인지, 엄마는 5등급을 받으셨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이제 공식적으로 치매 판정을 받으신 건가 싶어 마음이 복잡했다. 평소 눈여겨봐두었던 집 근처 데이케어센터를 둘러 보고 상담을 신청했다. 다행히 신설이라 깨끗하고 어르신들 상태도 그리 중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이것저것 물으며 신청서를 작성하던 담당자는 망설임 없이 “자부님이시죠?”를 마무리 멘트로 날렸다. “네? 아, 네에... 딸이에요. 제가 좀, 안 딸 같죠? 하하” 살짝 서류를 들여다 보니 이미 관계 칸에 자부라고 써놓은 상태. 하긴 내가 엄마랑 통화하는 걸 들은 친구들로부터 엄마야? 직장상사인 줄 알았어, 비즈니스 통화 같아, 등의 감상을 이미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모녀는 데면데면하기가 세상 남부럽지 않다.
아무튼, 대기자 명단을 거쳐, 엄마를 모시고 가서 시설을 보여드린 후 간단한 건강검진과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절차를 마무리했다. 넉 달 가까이 걸렸다. 드디어 출정의 순간. 쉽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기질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일단 거부하시는 데다가, 본인의 주장 없이 자식을 따르시는 분도 아니고, 당신이 처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시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였다.
“어르신, 이걸 바구니에 넣으세요.”
거부감을 보이는 엄마에게 뭐 배우는지 구경이나 가자고 해서 살살 모시고 갔다. “너도 먼저 가지 말고 같이 있다 가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와 청강생 모드로 뒷자리에 앉았다. 오재미 주머니를 종이박스에 던져 점수를 합산하는, 놀이 프로그램 시간이었다. 건강하신 분도 걸음이 불편하신 분도 계셨는데, 대체로 귀찮아하는 분위기였지만 진행자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하셨다. 97세부터 73세의 남녀 노인 스물다섯 여 분이 모여 활동하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때는 자식들을 키우고 살림을 이끌고 경제활동을 하고 부모를 부양하고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열심히 사셨던 분들 아닌가.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지니고 살았을 그들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젊은 요양보호사와 복지사들이 ‘우쭈쭈’ 이끄는대로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먹먹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이런 시설을 노인들의 유치원이란 의미로 ‘노치원’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재미있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짧게나마 경험한 그곳은 안전과 교육을 담보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어린아이 같은 보살핌을 받는 퇴행의 현장이었다. 단체생활 자체가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어렵지만 늙은 부모님들의 공간은 더욱 그러했다.
그런 공간에 엄마를 보내려고 애쓰는 내 자신도 씁쓸했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목적을 잊으면 안 되지!! 매일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시고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시는 엄마가 여기 다니시면 확실히 도움이 될 거야. 시간이 지나자 약간 관심을 보이는 엄마에게 여기 다니면 얼마나 좋은지, 혜택과 프로그램과 식단을 최선을 다해 과장했다. “그래. 그렇게 좋으면 며칠만 다녀 보든가...” 일단은 성공인가?
“귀찮지만 어쩌겠나”
하지만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역시나 엄마는 처음 상태로 돌아가셨다. 오히려 더 논리적으로 완강하게 거부하셨고, 나는 항복 선언을 했다. 그래. 어쩌면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른다. 매일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시더라도, 기억력이 계속 나빠지더라도, 당사자의 마음이 편한 게 제일 중요한 거야. 데이케어에 적응하면 잘 다니시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 엄마는 그 적응의 과정도, 단체생활 자체도 너무 힘든 사람인 거야.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맘 먹었다. 식사에 더 신경쓰고, 오토 리버스 같은 엄마 이야기도 좀더 들어주고, 일요법회를 다시 모시고 가고, 시간날 때마다 동생들 집을 유랑해야겠다.
아, 귀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