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버톡 주인장 Aug 28. 2023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행위에 대한 고찰

내 생일 미역국은 왜 같이 먹었는지…

얼마 전 엄마의 구순연이 있었다. 거창한 건 아니고, 4남매와 그 식솔들에 더해 대구에 사시는 이모 세 분이 모여 가벼운 행사와 함께 밥 먹는 자리였다. 그래도 제대로 된 옷 한 벌은 필요할 것 같아서 가까운 백화점에 모시고 갔다. 


엄마 마음에 드는 옷을 산다는 건 로또 2등 정도에 해당하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 ‘지금 있는 옷도 다 못 입고 죽을 텐데, 안 산다’는 고정 레퍼토리는 그렇다치고, 컬러풀한 옷을 권하면 ‘노인은 고상한 색을 입어야 한다, 내가 저런 색 싫어하는 거 모르냐’고 일단 NO!를 던지신다. 차분한 색을 드리면 ‘내 옷이 다 저런 색깔인데 또 그런 걸 사기 싫다’고 하신다. 노인 옷은 사이즈가 넉넉해야 하고 소재가 가벼워야 하고, 목이 파지면 안 되고 답답해도 안 되고, 잘 늘어나야 하고, 바지라면 절 바지 스타일로 아랫단에 고무줄 들어간 걸 찾으신다. 가장 결정적으로 옷값은 언제나 극비사항이다. 

그뿐이랴. 직원한테 “아유 노인이 그런 옷을 어떻게 입어?” “이게 얼마라고요?이걸 누가 사가요?” 다이렉트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시는 통에 전전긍긍은 언제나 나의 몫. 엄마와 옷 쇼핑 다녀오면 박카스라도 한 병 마셔야만 한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미리 백화점 답사를 갔다. 다행히 노인용 브랜드는 리* 하나만 눈에 띄는 통에 매장에서 눈대중으로 두어 벌 골라둔 후 엄마를 모시고 재방문. 그 매장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이 생겨서 무조건 여기서 사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런저런 변덕과 주장을 하는 엄마를 달래가며 옷을 입어보느라 분주한 중에 소파에 앉아 있던 70대 초반 정도 손님이 말을 걸어왔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잠시 주춤하던 우리 오마니, “나요?... 할머니 나이는 왜 물어? 얼굴 보면 알지. 얼굴에 다 써있잖아.” 당당하게 나이 공개를 거부하신다. 일순 당황한 상대방, “그러네요.” 와, 이 할머니, 순발력 무엇?!


다행히 애초 내가 찜했던 푸른색 원피스를 손에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무슨 대업을 완성한 기분으로 백화점을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언짢은 마음이 올라왔다. 바로 다음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미역국을 내 손으로 끓여 먹어야 하나 싶어, 빈정이 상한 것. 엄마는 내 생일 기억도 못해, 아들은 바빠서 생일 지난 다음주에 보기로 해, 생일 기억하고 밥 사주겠다는 친구도 없어, 동생들은 다들 카톡 문자나 보낼 테고... 

그래. 이럴 때는 셀프로 해결하고 기분 풀어야지. 엄마와 백화점 식당가에서 전복 미역국을 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남은 걸 자꾸 싸 가자고 하신다. 미역국 양이 좀 많은데다 엄마는 밥 생각이 없다고 몇 술 뜨다 마셨지만, 먹던 미역국을 싸 가기는 싫다고!! 싸달라고 하기도 눈치 보인다고!! 어떻게 했냐고? 치솟는 짜증을 꾹꾹 누르며 내가 내년치 미역국까지 2인분 다 먹고 왔음. 체할 것 같았음. 

뭐 그랬다고요….


덧: 집에 오는 길에 기분이 좀 풀려(그렇지 뭐~ 내가 얼마나 가겠어) 말을 걸었다. 

“엄마, 아까 옷 살 때 그 아줌마한테 나이 안 가르쳐주더라. 그 순간 그런 대답이 어떻게 나왔어?흐흐” 

“뭐? 누가 나한테 나이 물었어? 아줌마가 있었어?” 

“왜 그래애?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지금 우리가 백화점에 왜 간 거지?”

아, 울고 싶어라. 

작가의 이전글 오프라인 악플러를 고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