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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톡 주인장 Aug 25. 2023

오프라인 악플러를 고발합니다

K-장녀의 잔소리

“저 여자애는 참 뚱뚱하고 못 생겼는데 테레비에 계속 나오네.”

“지들끼리 짓고 까부는 프로를 뭐하러 봐. 나는 쟤네들이 왜 웃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 저러고 돈 받아가는 거지?”

“저 사람은 아나운서나 하지 뭐 저런 프로에 나와서 교양 없이 떠들어. 그 집 엄마가 보면 참 좋아하겠다. 장가도 못 갔지?”

채널권을 보유한 엄마가 손자에게 ‘너 보고 싶은 거 보라’며 리모컨을 넘기고 쏟아낸 발언들이다. 아들은 역시나 예능을 틀었고, 엄마는 역시나 5분도 안 돼 거침없는 촌평을 이어갔다. 이건 뭐 욕만 안 했지, 인신공격 수준의 발언들이다.

“할머니, 잘 생긴 사람만 텔레비전에 나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 사람이 얼마나 인기인데, 돈도 잘 벌고.”

“나는 저렇게 히히덕 대며 돈 잘 버는 거 하나도 안 부럽다. 저런 프로가 많으니까 수준이 떨어지는 거야.”

무논리 할머니 판정승. 리모컨 넘기고 제방으로 들어가던 아들이 갑자기 킬킬거린다.

“할머니 인터넷 할 줄 알았으면 악플러로 유명해졌을 거야.”  

엄마가 즐겨 보시는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가족이나 지인들끼리 나와서 노래 대결을 펼치는 게 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거실을 오며가며 강제 시청을 하게 된다. 하루는 학부모 모임에서 만났다는 3~40대 주부 팀이 참가해서 화려한 무대 의상과 춤 솜씨를 자랑했다. 내 눈에도 아침 방송인데, 좀 심한가 싶은 수위였다. 아니나 다를까, 쯧쯧 혀를 차는 엄마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말을 건넸다.

“우리 며느리들 저러고 나왔으면 당장 이혼감이다. 그치?”

“이혼? 저런 며느리들은 다 감옥에 보내야 해.”

설에 만난 세 며느리들에게 찢어진 반짝이 드레스 입고 텔레비전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면 바로 감옥 간다고 전해줬다. 덕분에 다같이 큰 웃음.


오프라인 악플 만렙 우리 엄마의 공격 지수도 많이 낮아졌다. 채널권을 놓고 가끔 티격태격하던 손주가 독립해 혼자 보시는 시간이 많아졌고 무엇보다 이해력과 기억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 하시니 진득하니 한 채널에 고정을 하는 법이 없어 여기저기 수시로 리모컨이 움직인다. 공격력이 떨어진 엄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 옆에서 이해를 거들어드리기는커녕 "엄마, 왜 이렇게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는 거야? 뭘 보고 싶어?" 목소리 톤을 높이고만다. 울적한 마음을 짜증으로 표현하는 나, 불효녀 K장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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