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엄마 디스하는 60 딸의 일상 기록
남이 안 궁금한 걸 굳이 설명하려 드는 게 꼰대의 종특인 것 같지만, 아무려나~~
이 영상의 시대에, 그마저도 길면 안 보는 세상에, 수많은 온라인 채널이 쏟아지는 이 마당에, 고전적인 굴쓰기를 시작한다. 지금껏 페이스북에 가끔 몇 자 끄적이던 게 다였는데, 맛집 찾고 리뷰 보느라 블로그 구경이야 했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는데, 뼛속까지 아날로그 인간이라 온라인이랑 안 친한 내가, 뒤늦게 브런치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그것도 올해 아흔인 친(정)엄마를 디스하는 불효막급한 내용이라니!!
발단은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라는 책을 읽고나서였다. 책은 살던 집을 떠나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던 엄마의 마지막 2년을 지켜보면서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 6남매의 막내이자 페미니스트로 독립적으로 살아온 저자는 자칭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엄마의 죽음에 관한 서사를 담고 있다. 작가는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타인의 손길에 목숨을 맡기고 있는데도 자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의식없이 생명을 부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다. 누구나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한번쯤 되돨아보게 만드는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출국이라는 예정된 일정을 강행하려는 자신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강조하고, 엄마와 엄마의 죽음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저자를 보면서 나랑 동류의 인간인가 싶었는데.... (사실 중간중간 의심스럽기는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의 상실감에 힘들어 하는 마지막 파트까지 다 읽고 나니, 아니, 이 사람도 별 수 없네! 엄마를 엄청 사랑하면서 아닌 척했던 거야?! 내가 진짜 객관적이고 냉정한 모녀관계를 보여줘야겠네! 뭐 이런 황당한 마음이 벌떡 일어섰다.
평소 우리 엄마와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엄마는 일관성 절대 없지만 늘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를 개발할 줄 아는 철저한 좌뇌형 인간이다. 경도인지장애로 단기기억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독립적이고 자존감 넘친다. (근 몇 년간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괴로워하는 중이시긴 하다.) 무엇보다 하나 뿐인 딸인 나 역시 엄마의 이런 모습을 많이도 닮았다. 맘에 안 든다. 다행히 나에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는 아버지의 DNA도 강력하다. 서로를 사랑하는지 의심스러운 엄마와 딸이 한 공간에서 살고, 효심과 사랑이 아니라 '시민의식'으로 엄마를 모시고 살다 보니 우리에겐 각종 웃픈 사건이 많다.
일생 귀차니스트로 살아온 터라 그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찐마라맛 모녀관계를 보여주겠다며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작가에게 감사 편지라도 보내야할까나?...
애니웨이, 앞으로 꾸준하게 엄마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을 남겨볼 생각이다. 어느 정도는 내 위주로 각색이 들어갈지 모르겠다. 뭐 그거야 쓰는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