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대해서

by 짐블스

“잘 생겼다.”


지적보단 칭찬에 가까운 말이다. 사실 많이 듣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 들린다. 그럴 때 내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결국 내 기분은 좋아지고 자존감도 한 단계 올라간다. 그럼에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칭찬받더라도 마냥 기분이 좋지 않다.


난 초등학교 때 부터 쭉 운동을 취미로하며 살았다. 한국에 있을 때 부터 축구, 태권도, 합기도, 검도 등을 다녔고 방학 땐 권투도 했다. 그러던 내가 돌연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 동아리에 오디션을 보고 붙었다. 오디션 공고에는 ‘아무도 떨어트리지 않습니다’라고 붙어있었고, 연극은 사실 축구팀에 못 붙어서 생각해낸 차선책이었다.


연극이 좋았다. 내가 아닌 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낯을 가리고 모임을 어려워하는 난,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사람을 좋아하고 같이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이미 날 소극적인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갑자기 짠! 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나타나면 모두에게 극도로 이질적일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무대 위는 달랐다. 무대는 무대다. 아무나 서지 못 하고, 특별한 순간들만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거기선 아주 넓은 범위가 허용된다는 것을 연극 동아리에서 깨우쳤다.


어느 날 리허설 도중 대본에 없는 행동과 지시를 살려 즉흥적으로 연기를 해봤다. 다들 놀랬다. “지미가 저런 면이 있어?” 실제로 무슨 일이냐고 극단 멤버들이 물어봤었다. 그건 나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의 책임감을 고스란히 캐릭터에게 떠넘긴 채로 내 자신이 되었던 자유로운 순간이었다.


그 때 부터 무대를 즐겼다.


하지만 공연 중에 객석에 아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이들은 날 나로 보지, 캐릭터로 보고 있지는 않을거야’. 실제로 그렇다. 연극이 끝나면 그 누구도 ‘재밌는 캐릭터네요, 역할이 참 좋았어요’ 라고 하지 않는다. 다들 “지미 너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니”라는 말을 한다. 연극을 본 건지 무대 위의 나만 본 건지 의심하게 만드는 후기들이다.


꾸준한 연극 활동을 통해 동남아시아 국제 학교 투어 공연을 하는 연극팀에 뽑혔다. 2년 정도 했는데, 그 중 마지막 해 공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상의 종말이 온 후, 지하 벙커에 고립 되어 있는 8명을 다루는 창작극이었다. 내가 맡은 캐릭터는 고립된 세상을 견디다 못 해 미쳐버리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리허설 중 그 미쳐버리는 부분에 다다르면 감독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한 달 넘게 나에게 아무 디렉션도 주지 않았다. 그저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는 따뜻한 듯 차가운 지도를 받았다.


몇 주 후, 결국 감독님이 참지 못 했는지 날 따로 불러서 요청했다. “그냥. 폭발해봐. 괜찮아.”


내 안에는 화가 언제나 너무나도 많이 쌓여있고, 또 쌓이고 있는 중에 있다. 어느 정도냐면, 콩쥐가 깨진 항아리 안을 내 분노로 채워야 했다면 두꺼비가 필요 없었을 정도다. 세상 모든 것에 예민한 성격이 나다. (그래서 헐크의 “난 언제나 화가 나 있어”라는 대사를 아주 좋아한다).


그날은 수학 선생님에게 화나 있었다. 매 수업마다 날 멍청하게 보는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내가 수업에 좀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숙제 검사를 할 때 1번이나 2번 문제풀이를 나에게 묻고, 성적이 좋은 애들에게는 훨씬 높은 번호의 문제를 묻는 패턴은 내 분노를 날 마다 기하학적으로 증폭 시켰다. 차라리 물어보지를 말든가. “넌 바보고, 쟤네는 머리 좋아” 라고 하는거 같았다. 이 추세는 1년 내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생각하며, 난 폭발했다. 감독님 앞에서 대사를 흉성으로 뱉고 있었고 입에서 침과 육성이 동시에 나오고 있었다. 눈은 크게 뜨고 있었고, 눈꺼풀의 근육은 이완 될 생각을 안 했다. 모두가 내 폐의 활동량을 인지 할 수 있는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면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다.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평생 참고 숨기기만 했던 나의 ‘화’를 바깥 세상에 보여준 것이었다. 미동도 않던 감독님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 동료들도 같이 박수를 쳐줬다. 어쩔 줄 몰랐다. 화 내는 것이 박수 받을 일은 아니지만, 무대, 그리고 예술의 한에서는 용납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독님은 즉시 리허설 공간을 교실에서 대극장으로 옮기자고 했다. 그리고 동일한 장면을 요구했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진 난, 다시 폭발하지 못 했다. ”그래 내가 무리했다“라고 감독님이 지나가듯이 내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내 화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화나지만, 나중에 리허설 때 화를 내면 돼’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의 불안과 비관적인 생각을 따로 축적하기 시작했다. 되돌아보니 건강한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결국 난 무대 위에서의 통제된 폭발이 익숙해졌고,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가 되서야 나의 감정을, 그리고 나를 조금 알게 되었던거 같았다. 졸업과 함께 연극, 그리고 연기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계속 하고 싶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졸업하고 연기를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다시 소극적인 내가 나를 가둔 것 같았다.


대학교 가기 전, 단편 영화나 연극에 오디션이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고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싱가폴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더 조그만 섬에 살았던 난, 외부 활동을 하려면 (외출을 아니꼽게 보시던) 부모님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라푼젤 공주와 같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오디션장에 가려면 그들을 넘어야 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부모님은 내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진지해졌다. 거실에서 누구도 쉽게 말을 열지 못 했다. 그러다 결국: “넌 너가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해?”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그 당시의 난 잘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가 그 날고 긴다는 애들을 제치고 더 잘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

“아니 전 그냥.. 계속.. 해 왔으니까..”

“그리고 냉정하게 거울을 보고 손에 가슴을 얹고 생각해봐. 너가 잘 생겼어?”


충격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이뻐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잘 생겼냐고. 너가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보다 잘 생겼어? 아니 그 정도는 돼? 아니잖아. 뚱뚱하고 여드름도 통제 못하는 주제에. 근데 무슨 연기를 해. 티비 화면에 니 얼굴이 크게 나와도 떳떳할 자신 있어?”


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 모니터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오디션 정보가 적힌 창들을 하나씩 닫았다.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는게 어려웠던 난, 거울 속의 내 눈을 바라보기도 힘들어졌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었는데, 이젠 괜히 못 생긴 증거를 거울에서 찾기 시작했다.


사람의 시선이 무서워졌다.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아졌다. 카메라 앞에 있기도 싫어졌다. 누군가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표정이 굳었다. 누가 잘 생겼다고 말하면 반응을 못 했다. 심지어 괜히 불쾌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들은 부러움과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오늘까지도 외모에 대한 말들은 날 순간 정지시킨다. 그것이 비관적이든 긍정적이든, 나에 대한 것이든 연예인에 대한 것이든.


그렇게 내 자신을 비하하기 시작한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때 확신이 들었다. 난 정말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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