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DHD 판정을 받았을 때, 약 먹으면 모든 게 다 나아지는 줄 알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천재가 되어 외우는 것도 잘 외우고, 공부도 잘하게 될 줄 알았다.
약 먹기 전 슈퍼맨을 꿈꿨던 나는, 지금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연필 뒷부분을 이로 문 게 내가 자주 했던 행동과 비슷해서 이 사진을 골랐다>
성인 ADHD 판정을 받고, 콘서타 18mg를 먹은 날 확실히 효과는 봤다. 콘서타는 각성제로 고양감이 찾아왔는데, 그때는 내가 바라던 슈퍼맨 모습 그 자체였다. 머리도 안개가 걷힌 듯이 맑아졌고, 망상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잡생각도 안 됐고, 딱 내가 필요한 생각만 할 수 있었다. 매일 낮마다 졸았던 것도 사라졌고, 모든 일에 집중이 잘 되고 능률이 올라갔다.
하지만 고양감이 사라지면서 나는 약 먹기 전과 다를 게 없어서 의아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약 먹기 전과 아예 똑같은 건 아니었다.
달라진 건 분명히 있었다.
약 먹기 전에는 나는 스스로 통제를 못했다. 한번 든 잡생각을 끊을 수 없었고, 망상이 잦아서 머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그걸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마구 비집고 들어왔고, 그건 내 집중력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약을 먹으면서 제일 달라진 건 저 부분이었다. 고양감이 사라지면서 잡생각과 망상이 들긴 하지만, 스스로 끊을 수 있게 되었다. ‘집중하자’라는 생각을 하면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버리고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5분, 10분 정도 집중하고 다른 짓을 했다면, 약을 먹은 후에 1시간 넘도록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3시간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면)이 넘게 집중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물론 완전히 고쳐지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다리 떨기나 방 청소 등, 여러 부분이 고쳐지지 않았다. 선생님과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의지로 그것을 멈춰 보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계속 흐르게 나뒀나요?”
그렇다. 나는 그냥 흐르게 둔 것이다. 다리 떨기는 내가 2n년 동안 습관으로 몸에 배어진 것이고, 고치려면 자기 의지가 필요했다. ADHD는 자기가 멈출 줄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잡생각과 망상을 스스로 끊을 수 없고, 감정 기복도 심하며, 충동성도 자신이 통제가 안 돼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성인 분들은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아서 약을 먹는다고 다 나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어린아이도 마찬가지고. 약은 보조제 같은 느낌이지, 모든 걸 고쳐주지 않아요. 무조건 행동 교정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의지를 가져서 멈춰보도록 해야 해요. 콘서타는 그걸 도와주는 겁니다.”
“ADHD 아닌 분들도 잡생각을 하고, 망상을 해요. 집중력도 약하고, 소리에 예민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자신 스스로 끊을 수 있는 거고, ADHD는 그걸 전혀 끊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약 먹으면서 그걸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약효가 들고 있는 겁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고양감을 한번 겪은 나는 그걸 잊지 못했다. 머리가 맑아지고 슈퍼맨처럼 슝슝 날아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다들 이 약을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겠지.
약은 그저 보통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모든 건 내 의지로 해야 한다. 일반인들도 그렇게 산다.
그래서 나는 내가 ADHD 증상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 끊어내도록 하려고 있다. 사람 말에 집중이 안 될 때마다 귀를 기울여 집중하자고 생각하면, 사람 말이 잘 들어온다.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떨고 있다가 다리 떨지 말자라고 생각하면 다리를 몇 시간 동안 안 떨게 된다. 잡생각도, 망상도 중요한 순간에는 끊을 수 있게 되었으며, 회의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일정 관리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약 먹으면서 가장 달라진 것이 또 있는데,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꽃밭이었다. 머릿속에서 했던 망상은 매번 내가 성공하는 망상이었고, 천재가 되는 상상이었다. 그래서 현실에서도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게 성공할 만한 계획 따위 없었고, 노력도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보려고 충동적으로 이것저것 시작은 하지만, 그것에 대한 계획이 없으니 큰 벽이 앞에 다가왔을 때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콘서타를 먹으며 현실로 돌아오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는데?’였다. 쉽게 예를 들면, 내가 웹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약을 먹기 전에는 시놉시스도 없이 도전했다. 당연히 세계관은 내가 손도 못 쓸 정도로 커졌고, 등장인물 이름도 기억 못 했다. 그런데 약을 먹으면서 등장인물, 세계관, 시놉시스까지 차근히 정리하며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써 내려갔다.
인스타툰도 약을 먹기 전이라면 무작정 첫 화부터 그리고 시작했겠지만, 약을 먹고 나서는 7화 정도 쌓아놓고 연재를 시작했다. 브런치 글도 마찬가지였다. 6편 정도 써놓고 작가 신청을 했고, 내가 앞으로 쓸 글을 정리해놓고, 미리 구상하고 메모해놓고 도전을 했다.
친구와 가볍게 시작하고 있는 유튜브도 소재 정리 10개 정도를 해놓고, 어떻게 찍을지 구상을 하고 들어갔다.
아마 그 전이라면 무작정 시작하고 지금쯤 머리를 감싸고 있을 거였다. 그리고 장애물을 헤쳐나가지 못해 포기하고 성취감이 떨어져 우울감에 빠졌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성급함도 사라졌고, 천천히 가자는 마음을 먹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들어간다.
사실 나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충동적으로 살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결론은 약 먹는다고 다 고쳐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 전에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니, ADHD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잘못된 건지도 몰랐을 거다. 2n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저 내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고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사람으로 살아왔을 거다.
물론 약을 안 먹으면 여전히 혼란스럽다. 잠을 못 자면 약효가 안 들어서 전날보다 더욱 혼란스럽고, 집중도 떨어져서 강제 바른생활을 해야 하지만, 나는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
내가 알기론 성인 ADHD는 완전히 치료하는 건 어렵다고 한다. 안경 같은 존재란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행동 교정이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 그렇다고 약을 끊는 건 모르겠다. 행동 교정을 하고 어느 정도 바뀐 사람이 약을 끊었는데, 5년이 지나니 다시 되돌아왔고, 결국엔 다시 약을 먹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그니까 어차피 계속 먹어야 할 존재인 거다.
누구는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는 거에 불만족스럽겠지만, 나는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다는 자체로 만족한다.